남장사 극락보전과 요사채. 남장사는 상주시 남장1길 259-22에 위치해 있다.

노악산 아래 사하촌은 붉게 익은 감들이 선한 이마를 드러내고 마을을 밝힌다. 계절의 아름다움은 늘 거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있어 마음이 시리다. 어느 집이라도 문 열고 들어서면 가을볕에 그을린 얼굴들이 반겨 줄 것만 같다. 빈틈없이 가을이 들어차 있는 노악산 골짜기 멀지 않은 곳에 천년고찰이 숨어 있다.

남장사는 경상북도 팔경 가운데 하나로 신라 흥덕왕 7년(832년)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다가 고려 명종 16년(1186년) 각원 화상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보물이 네 점이나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일주문이 보수중이라 보광전으로 통하는 옆문으로 들어서니 지방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느라 분주하다.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경내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님의 예불 소리에 조용히 타오르는 엄숙한 기도들,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무구한 눈빛들이 싸하게 가슴을 적신다. 대적광전 열린 어간문 안으로 보이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이 유난히 고독하다. 숨죽인 탑과 나무들, 허공조차 불심으로 물들어 툭 건드리면 유채색 물감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천년고찰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며 올곧은 정신을 지켜온 남장사는 층층시하 위계 질서가 느껴지는 전각들의 배치조차 권위적이지 않으며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편안하다. 내실을 다져온 명찰다운 풍모 속에는 안온함이 흐른다. 극락보전 앞에 일촌의 역사를 가진 탑들조차 천년 고찰에 어울리는 것은 나무 한 그루에도 불심의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 1635호)이 봉안된 극락전 안에서는 떠난 이의 영혼을 달래는 제(祭)를 지내는 중이다. 은행나무가 유난히 슬퍼 보인다. 영산전 오르는 나무테크 위로 떨어지는 샛노란 이별의 몸짓들, 스님의 경 읽는 소리가 애잔하다. 법당에서 슬픔을 정리하는 가족보다 모든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내게 더 큰 쓸쓸함이 쌓인다.

누구라도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를 품고 이승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누군가는 하염없는 부재의 기다림과 그리움을 안고 해마다 남장사를 찾아오리라. 가을날의 평화가 망자의 영혼에도 깃들길 기도하며 보광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천년고찰 가슴팍 위로 쏟아지는 햇살들이 나를 살며시 일으켜 세운다.

얕은 가을볕이 배를 깔고 누운 보광전 법당에서 나는 기도한다. 가을날의 섬세한 숨결같은, 그런 사람 되게 해 주소서.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 990호), 후불탱으로 봉안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 922호) 두 보물의 시선이 두런두런 바깥으로 쏠린다. 서둘러 보광전을 빠져 나왔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맷돌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현존하는 최대 크기로 민속학적인 가치가 상당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설렌 기대감과는 달리 상부맷돌의 창백한 얼굴빛과 마주하는 순간, 내 몸은 통증을 일으키며 딸꾹질을 해댄다. 응이진 그리움이 하얗게 출혈이라도 한 걸까. 상부 맷돌의 몸은 섬뜩하리만큼 희다.

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은 하부 맷돌의 다부진 몸체와 절제된 눈빛에 비해 극락보전 옆 계단에 거꾸로 엎어진 채 살아온 상부 맷돌의 불안한 눈빛은 자꾸만 가슴을 헤젓는다. 계단석이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상부 맷돌임을 알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라도 일으킨 걸까. 눈빛이 안쓰럽다. 숱한 시간과 세월의 농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둘의 어색한 만남 앞에서 광란하듯 타오르는 단풍들, 세상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가벼운 것 투성이다.

만남과 이별은 한 몸이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극락보전 안에서는 애틋한 별리의 슬픔을, 보광전 앞 마당에선 감격적인 맷돌의 만남을 남장사는 말없이 지켜본다. 예불소리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이 진실한 순간에도, 우리는 온전한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무엇으로 회자되어 기억 속을 떠돌 것이다.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뜬금없이 남편에게 문자도 보낸다. 갓 태어난 손녀와의 소중한 새 인연도 가슴 한켠을 밝힌다. 순간순간의 감동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나의 일부가 되어 가슴 적셔줄 인연이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남장사는 보물만큼 주지 스님에 대한 존경심도 남다르다. 여든이 넘은 성웅 주지 스님을 예약 없이 뵙기는 곤란하다. 보광전 옆 주지 스님이 머무시는 요사채를 향해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나서는 한 처사님의 모습이 가을빛만큼 아름답다. 가슴 찡한 예법을 따라 나도 두 손 모은다. 주지 스님의 건강과 남장사의 평온한 질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남장사에는 보물보다 더 반갑고 그리운 것들이 살아간다. 극락전 대들보 위에 조각된 서수 두 마리와 소중한 한쪽을 돌아보게 한 맷돌, 남장사 입구를 지키는 해학적인 돌장승, 모두가 내 영혼을 밝혀준 보물이다. 참으로 따뜻했던 시월 하순 어느 날의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