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뻐꾸기는 자기 둥지에 알을 낳지 않고 오목눈이나 노랑때까치 등 다른 새의 둥지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를 ‘탁란(托卵)’이라고 하는데, 다른 새의 둥지에 들어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의 진짜 알이나 갓 태어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한사코 밀어내어 제거한다. 자연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 잔인한 얌체 짓 장면을 보노라면 부아가 저절로 치밀어오른다. 참으로 잔혹한 생태계 현실의 하나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반추하노라면 떠오르는 중대한 시대적 변화 하나가 있다. 만년 드잡이질만 하는 청백전 정치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다양해져서 무지개 스펙트럼을 형성한 게 언제인데, 여전히 민심을 두 줄로 세우려는 억지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튼실한 제3 중도정당에 대한 갈망은 강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유승민의 바른정당, 안철수의 국민의당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대선에서 두 사람은 성공하지 못했다. 중도 안에서 중도좌파, 중도우파를 아우를만한 정치철학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분열적 정치 공학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뒤늦게나마 두 당을 합쳐서 ‘바른미래당’이라는 새로운 반성의 몸짓을 보였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호남 민심’을 기반으로 대붕(大鵬)의 꿈에 취해 살던 손학규라는 또 다른 야심가가 사령탑을 장악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건강한 중도정당의 구축에 이르지 못했다. 그 실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손학규식 정치의 실패를 뜻한다. 적어도 20%는 훌쩍 넘겨야 할 지지율이 투철한 좌파 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에도 걸핏하면 뒤처지는 신세다.

‘죽어도 개혁 못 하는’ 보수 자유한국당과 함께, 바른미래당은 ‘죽어도 패 갈라 싸우는’ 정당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 핵심에 손학규의 흉계 내지는 오산(誤算)이 작용한다. 손학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정치 인생 마지막 승부수를 건 듯하다. 무슨 추한 꼴을 당하더라도 그것만 이루면 성공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진 모습이다.

그의 잘못은 첫째 온 국민의 여망인 제대로 된 중도정당의 꿈을 박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하는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문재인 정권의 예하 부대장처럼 굴어온 그의 언행이 문제다. 두 번째는 이 나라 민주화 시계를 거꾸로 돌릴지도 모르는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를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바꿔 먹으려는 행태다. 아니, 어쩌면 원론적 취지와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이 나라 보수와 중도정치를 모두 말살할 수도 있다.

손학규는 그 화려한 정치 이력의 피날레를 이렇게 끌고 가서는 안 된다. 남의 둥지에 들어와 진짜 주인인 알들을 둥지에서 밀어내어 제거하는 뻐꾸기 알처럼 행세하는 그 모습은 온 국민의 절망거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어미 뻐꾸기가 부르는 곳으로 미련 없이 날아갈 그 무정한 뻐꾸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때 한국 정치의 희망이던 손학규가 이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