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대구 지역에도 탈북민 670여 명이 살고 있다. 또 대구에는 6·25 전후로 넘어온 이북 5도민도 3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망향의 설움을 안고 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북 5도민들도 대부분 초기에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그 자손들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탈북민 중에는 아직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어제 이북5도민회가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가족 결연식에 참여하고 왔다.

탈북민들의 정착 과정과 양상은 매우 다르다. 어느 탈북민은 국내 굴지의 증권회사 수위로 취직한 후 증권 전문가가 되어 수십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 내가 잘 아는 여성 A씨는 북에서 교수를 하다 내려와 그의 북한 ‘준박사’ 자격증이 인정되어 박사 과정에 특례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B여인은 중국을 거쳐 신병치료를 위해 탈북해 왔지만 다시 평양으로 가겠다고 절규하고 있다. 북한의 명문 김책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C씨는 아직 취업도 못하고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다. A씨를 제외하면 3분이 아직 기초 생활비 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

통일 전 동독민들의 서독 정착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동독의 트럭 운전기사는 이틀 만에 서독 운전기사로 취업되었고, 미용사는 바로 동네 미용실에 취업되었다. 통일 전 양독 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독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6·25 라는 전쟁을 겪었고,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다. 체제가 너무 이질화될수록 탈북민들의 정착은 사실상 어렵다.

탈북주민 중에는 남한 사회가 의외로 배타적이고 차별이 심하다고 불평한다. 탈북민 상당수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이유이다. 그들 중에는 이곳에서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단다. 어떤 탈북자는 지하철 타기부터 경쟁하는 남한 사회가 살기 어렵다고 실토한 바도 있다. 북한 수령체제의 경력과 의식 구조는 이곳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경제 문제가 해결되니 북쪽 가족이 그리워 매일 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단다. 지난번 탈북 모녀의 비극적인 자살은 탈북자의 고달픈 삶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이들을 위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탈북자 3만3천 명도 포용치 못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통일 문제를 논할 수 있을까. 선교 목적의 종교 단체의 탈북자 돕기 사업은 한계가 있다. 시민 단체의 탈북민 포용정책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통일운동 단체의 탈북자에 대한 냉대나 무관심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정부의 일시 정착금 지원과 임대 아파트 제공만으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의 정착을 돕는 정부와 시민 사회의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