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문집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소리’라는 제목의 14쪽 분량 얇은 책자였다. 발행일이 표기돼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었더니, 1980년 후반 포항의 풍경과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손글씨에 편집은 투박하지만, 순정이 배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의 전설, 포항의 찬가, 동명 알기, 유물과 유적을 찾아, 시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소리’는 서점 등에 무료로 배포됐다. 발행인은 20대 초반의 제철소 직원으로 필자보다 세 살이 많았다. 눈빛은 맑았고, 언행은 단아했다. 시를 잘 썼고, 해구식당 같은 선술집에서 선배 문인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그와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학이 인연의 매개였던 것은 분명하다.

심부름 삼아 ‘소리’를 들고 학원사, 경북서림, 종로서적 같은 중앙상가 서점에 배포하러 다녔던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지금 중앙상가에 서점이라곤 학원사뿐이지만, 당시엔 시민극장 앞에 종로서점이 있었고, 대로변 버스정류장 앞에는 경북서림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소리’는 10호까지 나왔다. 그와의 만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따금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추억으로 묻어두고 말았다. 한참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공장 작업복을 벗고 서울의 한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며, 번역 공동체와 영문학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지인을 통해 올해 첫 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시집을 펼쳤더니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삶이 시가 된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여전하고 뭐 그리 드러낼 만한 삶도 아니다. 그러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같이 툭툭 차이는 그런 무수한 삶 없이 세상 있을까. 그런 나와 내 이웃들의 삶에서 나오는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

낙엽이 뒹구는 중앙상가의 밤길을 걸으며 스치듯 지나간 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자문해보았다.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 혼탁한 세상에 ‘나와 내 이웃들의 삶에서 나오는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시심이 떠올랐다. 그 시심은 30여 년 전 그를 만날 때 내 마음에 무늬져 있던 것이다. 그 순수한 시심이, 그와 ‘소리’를 잊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중앙상가에는 오래 전부터 시심이 흐르고 있었다. 1950년대 말, 청포도다방을 무대로 이명석, 한흑구, 박영달 선생이 문화계를 이끌었고, 손춘익 선생이 그 뒤를 이었다. 의사인 빈남수와 최동하도 힘을 보탰다. 다방과 카페에서 시낭송회와 시화전, 회화전이 열렸고, 왕대포, 해구식당에서는 예술인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길게 보면 ‘소리’의 명멸도 이 흐름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누가 이 쓸쓸한 거리에 시심이 흐르게 할 수 있을까.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지만, 시심 없는 거리에 사람다운 삶이 깃들 수는 없지 않은가. 시나브로 깊어가는 가을, 그 궁핍한 시절에도 맑게 빛나던 시심이 거리에, 우리들 마음에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