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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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 후진국을 비교하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다. 국민소득, 무역거래 규모나 교육수준 등은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지만 특이한 방법 중에 하나가 거리의 간판의 품격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거리의 간판이 간결하면서도 모양새가 있고 품격이 있는 반면 후진국들의 간판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벽을 도배하다시피 뒤덮고 있어 품격이 떨어진다.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의 거리를 걸을 때면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간판으로 어지럼증을 느끼기 일쑤다. 벽을 뒤덮은 간판으로 인하여 도대체 도시의 품격을 찾아볼 수가 없다. 21세기 환동해권 중심도시, 세계적 대학과 기업이 있는 글로벌 도시의 얼굴은 간판으로 볼 때는 수준 이하이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거리의 간판이다. 간판은 회사명·상점명·상품 또는 서비스영업 종목 따위를 표시한 것으로, 광고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광고물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간판의 역사는 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인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상품 안내를 위해 벽에 하얀 도료를 칠하고 게시판을 만든 것이고, 1400년대 영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점을 알리기 위해 고유한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간판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16세기부터 파리와 런던에서는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인숙 간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간판에 대해 건물 정면에 붙여 달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실록에 보면 종루에서 광교통에 이르는 상점에 간판을 달아서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왕에게 건의했다고 나와 있다. 대한제국 말 개항 이후에 간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상업에 제일 긴요한 것은 간판이라 고로 외국 상업인은 한 가옥상에 간판을 하나·둘·셋을 달았다”라고 되어 있다. 해방 후 명동 등 번화가에 간판이 난립하면서 간판규제의 개념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간판규제는 줄다리기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도시의 미관을 더 해쳐왔다.

어쨌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간판이 이젠 한국에서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괴물로 변했다. 특히 포항에선 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몇 년 전부터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아름다운 간판’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간결하고 깔끔한 간판들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다.

포항도 우선 시범적으로 한두개의 거리를 지정하여 정말 선진국 수준의 간판거리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시범 거리를 통해 좋은 평을 받으면, 도시 전체로 확대하여 선진국형 도시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도시의 얼굴을 이토록 내버려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