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자가 간다, 김천으로 간다

김천승마장에서 즐긴 승마 체험.
김천승마장에서 즐긴 승마 체험.

 

김천승마장서 난생처음 말에 오르다

몇 해 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여행했을 때다. 키가 기자의 허리에나 미칠 정도인 5~6세 꼬마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안장도 얹지 않은 말에 용감하게 올라 바람처럼 내달리는 아이의 해맑고도 진지한 표정이 오랜 시간 동안 잊히지 않았다. 덩치가 2배나 큰 유럽 병사들이 원나라(칭기즈칸이 세운 몽골족의 왕국) 기병에게 쩔쩔맸다는 건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때부터였다. 말을 타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승마(乘馬)는 한국에선 ‘귀족 스포츠’로 인식돼 있다.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말에 올라 시원스레 달려볼 수 있을까?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기회가 왔다. 김천승마장에서 짧은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

볕이 좋았던 지난주 화요일. 김천시 남면 봉천리에 자리한 김천승마장을 찾았다. 단단하고 균형 잡힌 체형을 가진 승마 체험 조교가 반겨줬다. 안전을 지켜줄 헬멧을 쓰는 등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말 앞에 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말은 외형부터가 근사한 동물이다. 근육질의 다리와 늘씬한 등과 배, 거기에 사심(邪心) 한 점 없어 보이는 순정한 눈망울이 멋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출장 갔을 때 마차는 타본 적이 있다. 그걸 끄는 말은 흰색 털에 갈색 점이 드문드문 박힌 ‘잘 빠진’ 준마였다. 김천승마장에서 기자와 만난 말 역시 ‘잘 생긴’ 녀석이었다. 등과 배는 희고 얼굴은 초콜릿빛 적갈색.

마차의 좌석이 아닌 말의 등에 오르는 순간, 오추마(烏<9A05>馬)를 타고 하루에 1천 리를 내달리던 ‘초한지’의 항우가 된 듯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두려움이 함께 엄습했다. 올라탄 말의 등이 예상 밖으로 꽤 높았던 것. 조교가 “지상에서부터 170cm 정도”라고 미리 설명했지만, 내려다본 체감 높이는 3m가 넘어 보였다. 하지만 곧 안정감이 찾아왔다. 기자를 태운 말은 점잖고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둥글게 디자인된 실내의 흙길을 여러 바퀴 돌았다. 90kg에 육박하는 작지 않은 남성을 태우고도 거친 숨소리 하나 없이. 말은 의연하고 강한 짐승이었다.

김천승마장은 주로 아동들을 위한 ‘승마 교육’을 진행한다. 유치원이나 놀이방 등에서 단체로 승마장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기자처럼 ‘꼭 한 번 말을 타보고 싶은 성인’도 사전에 예약하면 간단한 승마 체험이 가능하다.

말은 3세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 그렇기에 목덜미를 쓰다듬어 칭찬해주는 걸 좋아한다. 반대로 말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금물이다.

“말에게 다가갈 때는 반드시 앞쪽에서 서서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 조교는 “사람이 지나치게 떨면 말 역시 두려워하니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천승마장 체험 예약: 054-433-8773

 

맑은 물빛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부항댐.
맑은 물빛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부항댐.

성큼 다가온 직지사와 부항댐의 가을

벚꽃이 하늘과 땅을 환하게 밝히던 지난해 봄. 직지사를 다녀온 이모가 말했다.

“칠십 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 봤다”고.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모, 가을날 직지사는 더 좋던데요.”

만산홍엽(滿山紅葉)이 가을이 완연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에도 곧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봤을 ‘고색창연한 고찰(古刹)’. 직지사를 찾은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멀리서 본 절은 노랗고 붉은 나뭇잎을 배경으로 한 동양화 같았고, 가까이 다가서니 대웅전 처마 너머로 펼쳐진 푸른 하늘이 일상의 스트레스로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김천 직지사의 가을 풍경.
김천 직지사의 가을 풍경.

신라 19대 눌지왕 시절인 418년에 묵호자(墨胡子)가 도리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알려진 직지사는 고려 태조가 중건한 절로도 유명하다. 사찰 안에는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비로전 앞 삼층석탑,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대웅전 삼존불 탱화 등 보물이 가득하다. 때론 아이들만이 아닌 성인들에게도 ‘보물찾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선물처럼 다가온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또 있다. 김천시 지례면 부항댐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물빛이 그저 그만이다. 댐 인근을 산책하다보면 ‘자연이 그려낸 그림’은 어떤 빼어난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부항댐 주변엔 레인보우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도 설치돼 있어 보다 ‘역동적인 여행’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도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 김천시의 설명이다. 주말이면 김천부항댐물문화관을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세계도자기박물관에 전시된 백자.
세계도자기박물관에 전시된 백자.

청자부터 명품 식기까지… 세계도자기박물관

오묘한 하늘 색깔로 1천 년 변함이 없는 고려시대의 청자. 몇 세기 전부터 유럽의 왕가와 귀족 가문에서 사용해온 언필칭 ‘명품 식기’….

고귀한 것의 생명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그걸 일컬어 귀물(貴物)이라고 한다. 세상에 드물게 존재하기에 얻기 어려운 물건. 김천시 대항면 ‘세계도자기박물관’엔 귀물이 가득했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시대 진품 백자는 물론이고, 여기에 덴마크,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영국의 도자기들이 미려한 자태를 뽐내며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단돈 1천 원. 동서양의 진품·명품 도자기를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가격치곤 매우 저렴하다. 이윤에 앞서 도시의 홍보를 중요시하는 김천시가 운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물관 안 도자기들의 전체 가격을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입구를 지키는 직원은 “모르긴 몰라도 당신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며 웃었다. 전시된 도자기 중에는 최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기에 요즘 젊은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가격 대비 만족감’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유럽 귀족 가문의 저녁 식탁을 재현해놓은 테이블이 흥미롭다. 거긴 온통 크리스털 식기로 반짝인다. 우리 도자기 30여 점과 유럽 도자기 500여 점, 크리스털과 유리로 만든 식기와 술잔 510여 점이 전시된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전통자기를 그윽한 눈길로 살피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부터 그릇과 찻잔에 새겨진 문양만 봐도 “이건 어느 나라 어느 회사가 만든 제품이야”라고 단박에 알아내는 식기애호가 주부들까지 흥미로워할 공간이다.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gimcheon.go.kr/mini/museum

 

직지사역에 자리한 카페 ‘옛길’.
직지사역에 자리한 카페 ‘옛길’.

7080 추억을 소환하는 열차카페 ‘옛길’

10살 안팎의 한국 아이들은 ‘기차’라고 하면 시속 300㎞에 가까운 속도로 번개처럼 달리는 KTX만을 떠올릴 게 분명하다. 자신들의 부모가 청년이던 시절엔 ‘비둘기호’ 혹은, ‘통일호’라 이름 붙인 시속 50㎞ 내외의 느린 기차를 타고 피크닉을 다녔다는 건 분명 모를 터.

기차는 낭만을 부르는 교통수단이었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운행을 멈춘 ‘옛날 기차’를 카페로 꾸민 공간이 김천의 ‘독특한 여행지’가 됐다. 지금은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은 대항면 직지사역에 들어선 열차카페 ‘옛길’. 이곳에선 커피와 주스 등 마실 거리와 돈가스 등의 간단한 경양식을 판매한다. 폐차된 새마을호 열차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찻집으로 꾸민 손길이 돋보인다.

실내는 아늑하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1970~80년대 유행했던 통기타 곡들이다. 30~40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찾아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좋아할 땐 말이지, 기차를 타고…”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맞춤인 공간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회갑을 훨씬 넘긴 할머니들. 주문 받는 것과 서빙이 조금 느리더라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너른 마음으로 웃으며 이해하는 게 좋다. /홍성식·나채복 기자

    홍성식·나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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