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제가 활력을 잃거나 자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가장 먼저 보호에 나서는 산업 중 하나가 철강 산업이다. 이는 ‘철’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당국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공산품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간 18억t이라는 세계조강생산량의 절반인 9억t 가까이를 생산하는 중국도 각국의 수입규제조치로 2015년 9천713만t의 수출초과를 기록했던 강재무역이 2018년에는 45.56%가 감소한 5천287만t으로 급감하였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초과 물량도 2015년 935만t에서 2018년에는 65.56%가 줄어든 322만t에 그쳤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강재수출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수입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강재 수입초과물량은 2015년 시점 433만t에서 2018년에는 8.77%가 증가한 471만t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각국의 철강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의 세계 시장에 대한 강재수출이 빠르게 위축되자 자국 철강 산업의 보호에 나선 중국임에도 유독 일본산 강재 수입만큼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오로지 일본산 강재만이 고품질, 고부가가치제품이기 때문일까. 이는 피상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일본 철강 산업이 지닌 경쟁력의 원천은 따로 있다. 일본 철강업체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강재 대부분은 일본의 자동차, 건설기계 등 철강재를 소비하는 전방산업에 해당하는 일본기업의 중국 현지공장들과 처음부터 끈끈하고 치밀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 사슬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철강업체들은 개도국에 일관제철소를 지어주는 동안 수출실적을 늘릴 수 있는 일시적인 전략은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해당 국가에서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목으로 철강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하게 되어 제 발목을 잡는 행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은 일견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철강기업 단독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자동차, 기계금속, 조선 등 자국 철강수요산업의 기업들과 항상 소통하면서 그들의 해외 공장 설치 단계부터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강재의 필요물량을 가늠하여 현지 조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부분품이나 중간재 생산을 지원하는 맞춤형 동반진출 전략을 선호한다. 그러한 전략은 일본 국내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기업에 필요한 강재를 공동개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는 강재개발단계부터 판로를 확보하고 연구개발비까지 절감하는 일석이조를 거두는 셈이다.

포항의 철강 산업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구개발을 통한 고품질, 고부가가치 강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부터라도 국내외 수요기업들과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강재를 개발, 공급하는 맞춤형 공급 사슬을 형성하여야만 포항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원천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