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선생 충효 한시 백일장 대회 ‘성황’
흰 두루마기 차림 전국 문사들
영천 임고서원서 ‘과거시험’
문장 솜씨 뽐낸 250여 답안지서
대구서 온 홍해수씨 장원에 뽑아

충효한시백일장 참가자들이 흰 두루마기에 두건으로 복장을 통일한채 줄지어 앉아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조규남 기자 nam8319@kbmaeil.com

충절의 고장인 영천의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에서는 지난 26일 이색풍경이 연출됐다.

느릿느릿한 동작이지만 전국에서 한 문장 쓴다는 문사(文士)들이 모여들었다. 꼿꼿한 반백의 노신사들은 흰 두루마기에 두건을 쓴 차림으로 복장도 통일해 몰려들어 줄지어 앉는다. 1년에 한번 열리는 ‘과거’를 보러온 전국의 유림들이다. 뒷마당격인 주차장에는 포항한시회 등이 타고온 대형 대절버스와 자가용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열기를 뿜었다.

훗날 조선조 태종이 된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에 단심가로 응답하며 지조를 지키다 순절한 포은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충효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마련된 충효한시(忠孝漢詩)백일장날이다. 올해로 12번째다.

시제로 연원절의양감종(淵源節義兩堪宗)이 내걸렸다. ‘뿌리의 근원인 절개와 의리는 하늘의 도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널찍한 천막 아래 줄을 맞춰 방석을 깔고 앉아 시상을 가다듬는 문사들이 뜻을 새기고 운(韻)을 맞추느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시험이 종료되고 답안지를 낸 선비가 무려 250명을 넘었다. 답안지가 회수되자 언제 긴장했더냐는 듯 삼삼오오 모여 주최측이 제공한 다과를 들며 제출한 답안을 비교하며 소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광경과 흡사하다. 점심시간 동안 일부 응시생들은 막걸리 잔으로 목을 축이는가 하면 일부는 서원을 둘러싸고 야트막한 야산에 뚫린 ‘포은산책길’에 오른다.

서원 뒷산의 정자 조옹대(鳥翁臺)를 출발하면 정몽주 선생의 부친을 모신 일성부원군묘를 거쳐 전망대로 원점회귀하는 7㎞의 산책코스도 잘 정비되어 있다. 낮은 강도의 업다운이 있을 뿐이어서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도 그만이다.

 

장원을 차지한 홍해수<왼쪽>씨가 조선시대 관리복장을 입고 상장을 받고 있다.
장원을 차지한 홍해수<왼쪽>씨가 조선시대 관리복장을 입고 상장을 받고 있다.

기자가 함께 따라 올라간 조옹대에서는 포은 정몽주 선생과 관련한 일화와 함께 진지한 토론도 오갔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포은 선생을 모신 사당(문충사)에 참배하는 등 점심 시간도 바쁜 하루다.

오후 4시께 다시 과거시험을 치른 서원 앞 광장에 빽빽히 들어선다. 드디어 장원(장원)을 비롯 입상자 발표 시간이다. 심사위원들이 고르고 고른 ‘장원’(壯元) 급제 작품이 한지에 붓글씨로 쓰여 과장(科場)앞 플래카드 줄에 자랑스럽게 내걸렸다.

間世先生降海東(간세선생강해동) 오랜 세월만에 선생께서 우리나라에 태어나시니

巍巍德業孰能同(외외덕업숙능동) 높고도 높으신 덕을 세우는 일에 누가 능히 같이하랴

淵源直續程朱脈(연원직속정주맥) 뿌리의 근원은 곧바로 정주(정자와 주자)의 맥을 잇고

節義曾連伯叔風(절의증연백숙풍) 절개와 의리는 일찍기 백숙(백이와 숙제)의 정신을 이었다네

硏理功垂千載下(연리공수천재하) 이치를 연구한 학문은 천년을 내려 이어져왔고

向君歌振萬黎中(향군가진만려중) 님(임금) 향한 단심가는 만백성 가슴에속에 남아있으니

願言二水三山盡(원언이수삼산진) 바라건데 영천의 두개의 물줄기와 세개의 산이 다하여도

流峙聲華永不窮(류치성화영불궁) 강산에 퍼진 명성 길이길이 끝이 없어라.

대구에서 원정와 장원급제한 홍해수씨가 관리들이 입던 관복을 차림으로 나와 경북도지사 상장과 함께 200만원의 상금을 받자 우레와 같은 축하박수가 쏟아졌다. 차상에 100만원, 차하에 50만원 등 총상금 1천400만원이 86명에게 전달됐다.

낙방했다는 한 참가자는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림들이 대부분 참가해 입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포은선생숭모사업회 한명동 회장은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지만 나라를 위하는 마음가짐은 충효라는 말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며 “충효를 으뜸으로 친 정몽주 선생의 정신은 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영천/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