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소규모 농업인 기준 등 법률 미흡
농업계 요청 예산 규모에 못미쳐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포기에 따른 성난 농심을 달래고자 여러 가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법률을 비롯해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제도 시행에 차질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25일 미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부터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에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는 기존 협상을 통해 이미 확보한 특혜는 변동 없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DDA(도하개발어젠다) 농업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상태에 있는데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번 결정에도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농업계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해 ‘공익형 직불제’ 등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익형 직불제’란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고 쌀 과잉공급을 초래하고 소규모 농가와 타 작목 재배 농가에는 혜택이 미흡한 현행 농업직불제를 대체할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직불제 지급 단가나 농가 규모에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관련 법률이 완비되지 않아 제도시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현재 시행 중인 쌀 직불제는 추곡수매제 폐지와 쌀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의 피해보전을 위해 2005년 도입됐다. 쌀 전업농을 육성하고 농업의 규모화와 생산구조 효율화에는 현행 직불금제가 효과를 보였으나 쌀이라는 특정 작물 농업인을 위한 제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2017년 기준 전체 농업직불금은 1조7천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80.7%(1조3천700여억 원)가 국내 전체 농가의 55%에 불과한 쌀 농가에 지급됐다. 면적 기준으로 지급하다 보니 상위 7%의 대농(3㏊ 이상)이 전체 직불금의 38.4%를 수령, 농가 72%에 달하는 소농(1㏊ 미만)은 직불금의 29%만 배정받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업인에 소득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농업농촌공익증진 직불제(공익직불제)를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현행 9개 직불제 중 쌀과 밭고정, 조건불리 직불제를 기본형 공익직불제로 통합하고 친환경, 경관보전직불제는 선택형 공익직불제로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당 175만원과 50만원 수준인 논과 밭의 직불금 지급단가를 앞으로 동일하게 지급하고 경영규모가 작을수록 높은 단가를 적용하되 대규모 농가의 경우에도 현재 지급수준에 비해 줄지 않도록 설계할 예정이다.

이에 정부는 이미 내년 농업 예산을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증가율 수준(4.4%)으로 확대한 15조3천억원으로 편성했다. 이중 공익형 직불제에 필요한 예산은 2조2천억원이다. 하지만 이는 농업계가 요청하는 농업 예산 5%(약 25조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며 공익형 직불제 예산 역시 향후 어민과 진행할 지원금 협상을 감안하면 부족하다는 것이 농업계 주장이다. 게다가 공익형 직불제에 대상이 되는 농업인에게 농약 사용기준과 농업 환경교육 이수, 마을을 정비 등의 의무도 따를 것으로 예상돼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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