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영덕에서 가을을 타다
태풍 피해 무색하게 영덕 하늘 눈부시게 맑아
산불났던 창포리 산지, 산림생태문화공원 변신
큰 바람개비 구경하고 세그웨이 타고 언덕 누벼

태풍이 지나간 대진해수욕장.

다시 영덕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얼마 전 태풍 ‘미탁’으로 경북 동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고래불로 가는 길, 가을 하늘은 언제 그토록 흉포했냐는 듯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햇살 속에서 소나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초록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는 아직 태풍의 날카로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낱낱이 부서지고, 여기저기 심하게 할퀴어진 해변은 말이 없었다. 곳곳에 모래와 자갈, 쓰레기 등이 한 데 쌓여 더미를 이루고, 찢어진 천막과 간판, 쓰러진 나무와 기둥들이 바람 불 때마다 바다를 대신하여 신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주는 게 바다에게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나마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다. 거센 태풍도 영덕 바다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못했다고,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고래불과 대진 해수욕장은 여전히 순도 높은 파랑을 빚어내고,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공중에다 하얀 뭉게구름을 국화꽃처럼 피워놓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대진해수욕장.
덕곡리 벼논의 황금물결.

태풍이 휩쓸고 간 해변에는 ‘쓸쓸한 황홀함’이 있다. 이때 황홀함은 풍경이라는 외부적 자극에 의한 고취인 동시에 슬픔이라는 내적 작용이 몰고 온 일종의 환각적 상태다. 슬픔 속에 오래 침잠되어 있다 보면 세상이 비현실적 공간처럼 여겨진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이든 육체의 고통 또는 현실의 절망이든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영덕 바다는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대진해수욕장을 걸으면서 나는 정지용이 ‘유리창 1’에서 토로한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바닷바람이 목 소매로 들어가 등이 서늘했다.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파랑 때문인지, 또는 수평선이 튕겨내는 가을 햇살 때문인지 눈에 자꾸만 물기가 고였다. 무언가 활달하고 복작거리는 온기가 필요한 시간, 눈을 좀 말려야겠다. 장날은 아니지만 영해만세시장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상설시장이 운영되고 있으니 언제 찾아도 시장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티 없이 푸르른 하늘 아래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파라솔들이 무지개를 띄워 놓은 영해읍내를 걸었다. 오래된 전통 시장은 이제 아케이드 안으로 자리를 옮겨 비와 바람, 추위로부터 안전해졌다. 바닷바람에 시렸던 내 몸도 아케이드 안에서 훗훗해졌다.

말린 생선, 멸치, 김, 젓갈 등 해산물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였다. 아니, 눈길을 끄는 게 아니라 콧길을 끌었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코를 벌름거리면 그곳엔 어김없이 어르신들 몇이 대낮부터 식당에 주저앉아 털 숭숭한 머릿고기와 따끈따끈한 돼지 간을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시고 있었다.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리면, 장사는 뒷전인 채 화투놀이를 즐기는 상인들이 보였다. 물건 하나 사지 않아도 마음의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아니, 어느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그러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나는 집에서 국물 낼 때 쓸 멸치를 좀 사서는 시장을 나섰다.

 

산림생태문화공원에서 볼 수 있는 풍력발전기의 장관.
산림생태문화공원에서 볼 수 있는 풍력발전기의 장관.

대탄리의 해맞이공원은 영덕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보는 영덕 바다는 ‘영덕 블루로드’가 자랑하는 절경 중의 절경, 뒤를 돌아보면 그에 못지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푸른 하늘을 가르는 장관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의 잔세스칸스(Zaanse Schan)는 ‘풍차마을’로 유명한데, 아기자기한 네덜란드 풍차마을에 비해 이곳 영덕 대탄리는 호방하고 장쾌한 멋이 있다. 풍력발전기라는 단어보다는 ‘풍차’가 예쁘고, 풍차라는 말보다는 ‘바람개비’가 곱다. 커다란 바람개비들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덕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해맞이캠핑장 사이에 ‘산림생태문화공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거대한 바람개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다양한 체험 활동까지 즐길 수 있다. 지난 1997년, 대형 산불이 발생해 폐허가 되어버린 창포리 산지를 영덕군이 수년에 걸쳐 복원하고 가꾼 것이 오늘의 산림생태문화공원이다. 출렁다리, 음악당, 인공계곡, 목공예체험장, 조각공원, 식물원 등 다채로운 시설들이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달려라 왕발통’이다. 왕발통은 ‘세그웨이(Segway)’라 불리는 1인용 전동휠바이크다. 이 세그웨이가 영덕산림생태문화공원에 와 왕발통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얻었다.

9천원을 주고 왕발통을 빌렸다. 2시간 동안 실컷 탈 수 있다. 헬멧과 무릎보호대 등 안전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주행을 시작했다. 산림생태문화공원 이곳저곳 ‘전동휠 체험코스’가 잘 닦여 있어 어린이와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왕발통으로 누빌 수 있다. 왕발통을 달리며, 단풍으로 물든 산 능선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을을 탄다’는 말은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고독감이나 낭만 지향성이 민감해져 마음 싱숭생숭한 상태를 뜻하지만, 나는 단순히 ‘탈것에 몸을 얹다’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게 가을을 타기로 했다. 왕발통을 타고 만추의 고즈넉한 정취 속을 달리는 일은 곧 가을을 타고 낭만과 행복 속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푸른 수평선이 내 마음의 팔레트에 오색 물감을 채워, 나는 지상의 그 어떤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색채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 순간 ‘색채’란 예술적 감수성의 다른 이름이다.

왕발통을 타고 하도 신나게 달렸더니 출출해졌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곳은 영덕읍 남석리의 옛날불고기 식당. 남석리에는 두 곳의 옛날불고기집이 영업 중인데,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성식당’이다. 인기가 많아선지 오후 2시인데도 벌써 점심 장사가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옆집인 ‘이가네 옛날불고기’로 향했다. 지역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은 집이다. 메뉴, 요리법, 양, 가격은 두 식당이 거의 비슷하다. 질 좋은 한우 불고기 1인분 120g에 8천원. 하지만 2인 기준 3인분이 최소 주문 단위여서, 나는 혼자 3인분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이가네 옛날불고기’의 옛날 한우불고기.
‘이가네 옛날불고기’의 옛날 한우불고기.

향 좋은 숯이 가득 담긴 화로가 열기를 뿜으며 상에 오르고, 두꺼운 철근으로 제작된 삼각형 화구가 얹어졌다. 그리고 양념육수와 고기를 분리해서 익히는, 정말 옛날 방식의 불고기 불판이 등장했다. 치익 칙, 하는 고기 굽는 소리, 스멀스멀 오르는 맛있는 냄새, 동백꽃잎처럼 얇게 저며진 선홍빛 소고기가 점점 가을빛으로 익어가는 광경, 화로에서 오르는 열기는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고, 알맞게 익은 불고기를 계란노른자 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는 순간 육즙과 양념과 한우의 담백한 맛과 식감이 입 안에서 팡팡 터졌다. 영덕의 옛날불고기는 미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시각, 촉각까지 오감을 모두 충족시키는 음식인 셈이다.

3인분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는 아무데로나 아무렇게나 걷기로 했다. 영덕 우체국과 영덕 버스터미널과 영덕 소방서와 영덕군민공원을 지나자 황금빛 벼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덕곡리,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은 벼들이 대견하고 고마워서 대뜸 코끝이 시렸다. 어느 시인이 묘사한 것처럼,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주듯 바람이 불 때마다 가을논의 벼들은 나란히 누웠다가 나란히 일어서면서, 한없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나는 그곳의 낮아지는 저녁해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장석남,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던 시인처럼, 나도 덕곡리 황금물결에 축축한 마음의 옷들을 하나 둘 벗어 내어 말렸다. 투명한 알몸이 되어 버린 내 마음에다 따사로운 볕이, 고추잠자리의 비행이, 참새 떼의 지저귐이, 오십천 흐르는 물소리가 스웨터를 짜 입혔다. 나는 아마 가을 내내, 아니 겨울까지도 춥지 않을 것이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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