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북한의 사법체계는 ‘인민재판’ 방식이다. 1946년 12월 1일부터 현재까지 북한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인민재판’은 ‘공개된 장소에서 일반 군중들을 모아놓고’ 한다는 차원에서 외견상 상당 부분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판의 핵심인 재판부 구성이 문제다. 조선로동당이 지명한 재판부가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도무지 문명사회가 추구하는 ‘공정한’ 재판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이 시작되면서 악착같이 밀어붙인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의 교묘한 정치보복극은 소위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진보 시민단체’가 장악한 공기관들의 ‘위원회’는 이미 태동에서부터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온갖 기밀서류들을 다 까발리며 정적 연루자들의 적폐목록을 찾아내어 언론에 ‘죽일 놈’이라고 공표하며 검경에 넘겨 수사하게 하는 인민재판식 타작 놀음을 해왔다.

‘조국 낙마’ 이후 집권세력은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있다. 엊그제 친여세력 집회의 손팻말도 ‘설치하라 공수처’와 함께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겨냥한 ‘내란음모 계엄령 특검’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검찰 개혁’이라는 흐드러진 구호와 함께 여권(與圈)이 조국 블랙홀을 넘어 외치고 있는 ‘공수처’에 대해서 깊이 따져보아야 할 때다.

패스트트랙 급행열차에 올라가 있는 민주당의 법안은 어쨌든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뽑도록 하고 있다. 추천위원 7명 중 최소 6명의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도록 하는 등 꼼수 장치를 붙이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더욱이 공수처 검사의 절반 이상을 비(非)검사 출신으로 충원한다는 조항에 엄청난 마수(魔手)가 숨어 있다.

‘적폐 청산’ 토끼몰이처럼 민변, 좌파 시민운동가들을 동원해 ‘민변 검찰청’ 혹은 ‘대통령 호위무사단’으로 만들자고 들면 식은 죽 먹기다. 더욱이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검찰 개혁’의 본질로 부르대던 사람들이 공수처에는 다 주자고 하니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수상하다는 것이다. 잘라 말하면,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한 대통령을 초헌법적인 최고의 사냥개들을 거느리는 황제로 만들려는 음모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판사 3천 명, 검사 2천 명과 경찰 간부에 대한 기소권을 보장하는 ‘공수처’ 법안은 결코 허투루 다룰 일이 아니다. 나라 말아먹는 공직자들의 부패 비리를 발본색원한다는데 싫어할 국민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추악한 ‘인민재판’을 획책해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 장치를 만들어 놓고, 수사권·기소권을 조정하면 된다. 모사꾼들의 철저한 기획 아래 지지자들을 길거리에 내세워 몰아붙이는 ‘공수처’는 중국 역사의 오욕으로 기록된 ‘홍위병’ 소동을 떠오르게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공수처’ 법안은 암수(暗數)가 다 제거될 때까지 더 연구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