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10월 안개는 어느 달보다 진하고 무겁다. 눈으로는 한발조차 내딛기 힘들다. 안개에 쌓인 세상에서 생각한다, 안개는 너무도 빠른 10월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한 자연의 벽이라고!

시간은 나이의 속도(㎞/h)로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달 또한 예외가 아니다. 10월 달의 빠르기는 1월의 10배 이상이다. 옆 한 번 돌아볼 겨를 없이 벌써 10월 말이다. 그 어떤 상실감이 이보다 더 클까! 필자를 위로하는 것은 역시 시(오세영, ‘시월’)이다.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돌아보면 문득/나 홀로 남아 있다.//(중략)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시인의 말대로 지금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잃어가는 연습이다. 하지만 늘 생각뿐이다. 놓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뜻대로 안 되는 게 삶이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 분명 필자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데, 성숙은 늘 남의 일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하면 필자의 이런 생각은 너무 사치이다. “중간고사 끝난 지 언제라고 11월 중순까지 매일 몇 과목씩 수행평가입니다! 정말 숨 한번 제대로 쉴 수조차 없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로 필자에게 하소연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수행평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교육부 지침을 잠시 보자!

“수행평가는 교과 담당교사가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학생의 수행과정과 결과를 평가해야 하며, 과제형(숙제형)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학교교육활동 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정말 말로만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평가는 없다. 그런데 정말 말처럼 시행될까? 어느 방송사의 “새벽 4시까지 수행평가 ‘허덕’, 학생들 혼수상태” 라는 보도에 대해 교육부는 “과제형 수행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점검하겠습니다.”라고 교육 현장과 너무도 동떨어진 답변을 내놓았다. 과제형 수행평가라고 해서 과제를 해가는 것도 있지만, 모양만 과제형이고 사실은 암기형 서술 평가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이런 구태 한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잠을 설치고 있는데, 교육부는 이런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 나라 교육을 암흑의 터널로 몰아넣은 것은 분명 평가이다.

과정 중심 평가는 물론 그 어떤 평가가 되었던 이 나라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한줄 세우기’다. 평가 목적이 오류인데, 방법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오류가 참이 될 수는 없다.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선 그 오류를 인정해야 하는데, 교육 당국은 그걸 계속 외면만 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낸 수행평가를 학생들보다 더 잘 볼 자신이 있는가?

평가를 위한 무의미한 평가 대신 결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자연을 학생들에게 마음껏 보게 하는 10월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