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혁신·포용·공정·평화 4가지 목표를 제시하며 내년 예산의 기조를 설명했다. 그러나 모처럼 가진 국회연설에서 극도의 분열상을 나타내는 민심을 추스를 혜안이 제시되기를 바랐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연설에는 무엇보다도 최근 국가적 혼란을 촉발한 당사자로서 진솔한 ‘자성’이 전혀 있지 않았다.

아무리 예산안 연설이라고 해도 유리한 지표들만 나열하며 마치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식의 자화자찬을 펼치는 대목은 듣기 거북했다. 특히 ‘조국 블랙홀’을 만들어 온 나라를 소용돌이에 빠트린 당사자로서 진지한 성찰의 목소리를 기대했던 대다수 국민은 실망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검찰개혁의 민심만 들먹거리며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을 압박하는 대목에서는 오직 ‘마이웨이’의 아집만 두드러졌다.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이는 문 대통령의 연설은 도무지 달나라 외계인 같은 오판마저 엿보여 국민적 걱정을 보탤 따름이었다.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말도 안 된다”고 야유를 보내거나 손가락으로 ‘X자’를 그려 보이며 항의 퍼포먼스를 했다. 시정연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곳곳에서 불편한 여야 관계가 여실히 노정됐다.

불길한 기운은 이미 전날 종교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어렴풋이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국민통합 면에서 협치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해 자신이 곧 국민갈등의 진원지임을 완전히 망각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통합과 협치를 위해 대통령이 한 의미 있는 통치는 기억에 없다.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하겠다”는 시정연설 말미의 대목을 기억한다. 남의 말을 다 들어주는 척 퍼포먼스만 부지런히 하고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계속 보아야 한다면 이는 정말 참담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