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낡듯이 지식도 낡는다.

△배움과 학문의 차이

배움과 학문의 차이는 뭘까? 하나는 한자, 하나는 한글?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문과 배움은 둘 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사전적으로 보면 학문은 새로운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의미가 덧붙어 있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배움은 필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걷는 법, 밥 먹는 법, 글을 읽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수영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배움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체화된다. 결국 체화된다는 것은 몸의 일부가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배울 때는 자판부터 익힌다. 처음 배울 때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고 키를 누르지만 다 배우고 나면 정작 키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해도 글을 쓸 수 있다. 자판으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글을 쓸 때 특정 자음이나 모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인다.

몸과 완전히 일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 배운 것은 잊어버릴 수 없다. 글을 배운 사람은 다시 글을 배울 수 없으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은 다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우리의 삶의 일부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처음 배울 때가 가장 중요하다.

학문은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체계적이란 일정한 순서와 규칙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수학을 배우려면 수학의 기호를 알아야 하고, 그러한 기호들이 사용되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기초적인 것을 배운 후에 이를 활용한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이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젓가락질을 아무리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배워봐야 젓가락질은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운 사람은 바람의 특징을 토대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으며, 태양의 고도와 그림자를 활용하여 산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깊이를 지향한다.

그런데 이런 학문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배움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옛날에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학문은 경험만으로 구축되지는 않는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현상이라는 경험에서 비롯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일은 지적 능력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산의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 산의 높이를 구할 수는 없다. 학문을 하는 사람, 즉 학자는 경험을 종합하고 정리해 하나의 이론을 구축한다. 학문은 현상의 종합이며, 다양한 현상들 속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추출해 내는 일이다. 이것을 이론이라 부르고 이런 이론을 학문이라고 부르며, 이런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을 학자라 부른다.

즉 학자는 현상을 탐구해 이론을 구축한다. 이렇게 정립된 이론은 실제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산의 높이를 구할 수 있다면 피라미드나 나무의 높이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은 없다. 하지만 산의 높이를 알면, 다른 산을 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힘이 들지, 산 정상이 날씨는 어떨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산을 넘을 때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식은 살면서 좋든 싫든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작정을 하고 익혀야 한다. 젓가락질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도 포크처럼이라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수학이나 물리적 지식은 배우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결코 이 지식을 익힐 수 없다. 그래서 학문은 자발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수준으로 거듭하여 도약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학문은 의식적인 체계화다. 그래서 학문을 개척한 최초의 사람이 존재한다. 학문은 새로운 배움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열어가는 일과 같다. 이런 학문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무수히 새롭게 생겨나고 필요가 다하면 소멸되기도 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수백만 년 동안 사냥과 채집을 잘 할 수 있는 지식이면 충분했고, 농경사회에서는 농경과 관련된 지식이면 충분했다.

고대의 그리스, 중국, 이집트 등과 문명권에서는 철학과 자연과학, 수사학, 군사학 등이 필수과목이었고, 그 경계가 따로 없었다. 고대 사회에서 군사학이 중요했던 것은 그만큼 전쟁이 잦았기 때문이다. 즉 교육은 필수 학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꼭 배워야만 하는 것들은 시대마다 달라지고 그럴 때마다 교육의 필수과목도 달라진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지금의 교육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가기에는 낡은 감이 있다. 지금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있다. 예견된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할 때만 우리가 바라는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는 대학이 지식 플랫폼으로 거듭나 투명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