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월드컵 지역예선 평양 남북 축구 경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無)중계 무관중 경기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평양 김일성 경기장의 남북 축구는 ‘깜깜이 축구’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축구팀은 남북 직항로를 포기하고 베이징을 경유하여 이틀 만에 겨우 평양에 도착하였다. 남북의 축구 대표 팀은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서 육박전에 가까운 거친 경기를 치른 것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열리는 남북 축구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모든 협상을 배제한 채 관중과 중계가 없는 경기만을 허용하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도 경기 인원과 응원단의 차별 없는 비자 발급을 의무화하였는데 북한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지난해 9·19 선언 시 문재인 대통령을 그렇게 환호하던 평양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북한 당국은 북미 회담이 기대되는 시점임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많은 것을 잃게 하였다. 경기장의 무관중은 그들이 아직도 엄격히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북한 당국이 금지시킨 중계방송도 스포츠의 보편적 보도 상식을 넘는 행위이다. 국제 축구연맹(FIFA) 규약은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의 처사는 북한이 언론의 자유가 없는 통제된 사회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북한 당국은 과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수단과 응원단을 남한에 파견하여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부산 유니버시아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도 그들은 대규모 미녀 응원단을 파견하여 선전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이번의 북한의 무중계 방침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깜깜이 축구’를 결정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노이 노딜 회담 이후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북한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역할에 대해 최근에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은 지난번의 한미 군사 합동 훈련과 최첨단 전투기 F35A등 도입에 대한 반응이다. 이들은 10여 차례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의 시험 발사도 모자라 평양 축구 경기까지 압박용 카드로 선택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축구 실력이 남한에 현저히 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모두가 북한의 유치한 발상이다.

어떤 이유건 북한의 이번 처사는 북한 스스로 ‘비정상 국가’임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중요한 외교적 담판이 있을시 소위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전술은 이를 간파한 미국이나 한국이 이제는 수용하지는 않는다. 결국 북한은 이번 ‘깜깜이 축구’에서 얻은 것은 없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처사를 비난하는 국제적 여론만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은 백두산에서 백말 타는 모습만 보이며 체제의 안정을 과시하고 있다. 정부도 북한의 ‘깜깜이 축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