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미 회사원

종이에 낙서하듯 끄적이는 게 좋다. 수업 시간에도 회의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적어가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하면서 쓰는 행위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시간이자 동시에 사유를 깊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희열을 느끼고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욕구 또한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냥 쓰는 것,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평가 따위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며 나를 회복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자신에게 그 어느 때 보다 진솔할 수 있다. 어떤 것에도 종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글솜씨를 알아주거나 감탄해주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연습 삼아 써 내려가고 나 자신과 자유로운 대화를 하면서 감정을 배출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글이 명확해져 간다는 것은 나 역시 구체화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면 더 잘 보고 더 사랑하게 된다. 초점을 내게 맞추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답을 구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 보려 애를 써본다. 이런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유하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편협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상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면역력도 조금씩 늘어갔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막연한 문제들이 점점 명료해지는 것을 느낄 때도 많다. 뚜렷이 알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안정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쓴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없는 용기 비슷한 것이 불쑥 생기기도 했다.

처음 나를 향한 질문의 글들은 대부분 부정적 감정을 배설한 밭이었다. 그것들을 거름 삼아 씨앗이 뿌려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긍정의 힘을 가진 이야기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싹이 자랐나 보다. 이것은 실로 내게 큰 기쁨이자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의 짧은 글쓰기는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고 힘을 더해주고 있다.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반기며 마중한다. 의식하는 나와 무의식의 내가 비밀을 공유한 친구가 된 기분이랄까? 써 내려간 글을 보며 만족에 빠진다. 나는 내가 가장 친애하는 독자이자 작가다.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내 글은 공허함을 덮어준다.

이렇게 내 끄적거리는 글쓰기는 비밀스러운 대화의 추억으로 쌓여간다. 이 보물은 자신감의 밑바탕이며 기죽지 않되 거만하지 않은 나로 성숙시켜 준다. 내게 이런 끄적임은 강하면서 유연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행위이자 의식이다. 멈출 수도 멈추어서도 안 되는 일과로 변했다.

운동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모든 행위가 치유의 순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회복의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다른 이의 글을 먹으며 커갔고 내 글을 먹으며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생긴 것을 느낀다. 소심하고 차분하던 일상의 글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거침없기도, 대담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과 함께 나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승리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은 있지 않을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고민 속에서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화려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대단한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매일 일정 분량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짧게라도 의지적으로 시간을 내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야만 한다. 바쁜 일과 중 미뤄지거나 건너뛸 수도 있지만, 하루에 한두 줄 나에 대한 기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노트에 써 내려가는 기록은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빛나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