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불교 열반경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여러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 귀를 만져본 사람, 머리를 만져본 사람, 코를 만져본 사람, 다리를 만져본 사람, 배를 만져본 사람, 꼬리를 만져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했다. 그들 각자는 직접 생생하게 체험을 한 것이니 누가 다른 소리를 하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신각신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싸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런 노릇이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이 오히려 사실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낳을 수 있으니 과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겠다.

대한민국이라는 코끼리에 대해서도 맹인모상(盲人摸象)식의 편견과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이 겪어 알고 있는 부분을 전체인 양 일반화하거나 이념과 진영논리에 빠져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형성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정부 수립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는지 따져 보면 성장과 성공을 한 나라인지 실패와 퇴행을 해온 나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또 한 방법으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를 해보고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당시에 비슷했거나 오히려 나은 나라들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면 성패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

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성공을 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재니 혁명이니 쿠데타니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런 분쟁과 부작용도 결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것은 지난 정권들에 잘잘못이 있었지만 과보다는 공이 더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들이 내세우는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논리는 기왕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국사태’로 드러난 좌파세력의 민낯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망상이고 자가당착인가를 알게 한다. 심지어 일부 교수나 작가들까지 ‘조국’을 비호하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최소한의 정의나 윤리마저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김일성 일족을 신(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사이비종교집단에 불과한 것이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상일진대, 김정은 일당은 대화나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수백만 원혼들과 칠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