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 영화 ‘버티고’서
현실에 갇힌 직장인 ‘서영’역
“지금 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허함 같은 공통적 감정 다뤄”

배우 천우희. /나무엑터스 제공
영화 ‘써니’의 본드걸, ‘한공주’의 공주, ‘곡성’의 무명, ‘우상’의 련화까지.

스크린에서 늘 ‘센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천우희(32)가 모처럼 현실에 발붙인 감성 연기를 선보였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버티고’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IT 회사 계약직 디자이너 서영. 직장과 연인, 가족 등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곳 없어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인물이다.

최근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기존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에 더 끌렸다”면서 “나이 30대에 접어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일상을 담은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체질’에서는 드라마 작가 임진주 역을 맡아 밝고 경쾌한 연기를 선보였다.

‘버티고’ 속 서영은 조금 다르다. 사내에서 몰래 연애 중인 상사는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하고,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와 신세 한탄을 한다. 회사 재계약 시즌을 앞두고 압박감도 커지고, 어지럼증과 이명 현상도 부쩍 심해진다. 서영은 진공 속에 갇힌 듯 답답함과 불안감을 느끼지만,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서영을 바라봤을 때 너무 답답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노련하고 능숙한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일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낯선 사람이나 동료 모두에게 친절하고 반갑게 대하지만, 어떤 사람은 인사하는 것조차 쑥스럽고 버거울 수 있거든요. 서영 역시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 나름의 배려를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성 주인공에 여성 서사를 다뤄 여성 영화처럼 비치겠지만, 사실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을 다룬다”면서 “누구나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지만 외롭고 고독할 때가 많고, 압박감과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우희는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한 뒤 ‘마더’ ‘써니’ ‘카트’ 등으로 얼굴을 알렸고 첫 주연작 ‘한공주’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 뒤로도 개성 있는 연기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그에게도 버텨야만 했던 힘든 순간은 있었다. 천우희는 영화 ‘우상’ 촬영 때를 떠올렸다.

“‘우상’은 이수진 감독님과 ‘한공주’ 이후 두 번째 작업이라 제가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죠. 그러나 촬영이 당초 예정보다 훨씬 길어져 7개월 동안 진행되다 보니, 긴장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더구나 당시 (연기 때문에) 눈썹이 없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어요.” 천우희는 “그때 모든 것을 다 소진한 것 같았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뛰어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실망했고, 처음으로 의욕도 잃었다. 작품을 선택하거나 연기할 때 두려움도 생겼다”고 털어놨다.

천우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돌이켜보면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에너지를 얻으며 지금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들 때는 너무 이겨내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투정도 부리고, 엄살도 떨고, 무너지면 무너진 대로 주저앉아서 다시 힘내고 그냥 흐름에 맡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 이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쑥스러워했던 그는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 ‘천우희의 희희낙낙’을 운영 중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그가 새로운 취미를 찾아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는다. “연기 말고는 흥밋거리가 없어요. 그래도 이제는 연기 외적으로도 에너지를 쏟거나 잘하는 것을 찾고 싶네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