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정전기장 이론으로 우주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이지요. 소년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바흐와 베토벤에 빠집니다. 하지만, 악보대로 연습해 완벽하게 연주하는 일에 싫증을 냅니다. 처음 본 악보를 연습 없이 즉석에서 연주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에게는 늘 새로운 악보가 필요했습니다.

소년은 세상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를 하지요. 피아노 위 뚜껑을 열고 피아노 줄 사이에 다양한 물건을 끼워 넣기 시작합니다. 털실, 포크, 나무 빗장, 플라스틱, 지우개, 볼트. 마침내 소년은 아버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발명가’ 세계에 입문합니다. 존 케이지 이야기입니다.

그는 1951년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그가 발견한 장소는 하버드 대학 녹음실이었습니다.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방음 공간입니다. 존 케이지는 그곳에서도 소리를 듣습니다. 먼저 자기 숨소리를 듣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 쿵, 쿵…”

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차단해도 어딘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오선지에 악보를 끄적입니다. 순식간에 완성한 이 작품이 존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됩니다. 어제 편지에 설명한 4분 33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다운 삶은 멈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소음과 자극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내 심장 소리, 호흡 소리. 저만치 아래 내 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던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진정한 내 삶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 아름다운 공명이 일어나 질적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너와 나의 관계 또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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