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복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뒤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은 피아니스트는 조심스레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제자리에 놓습니다. 청중들은 연주를 기다리지요.

그런데 연주자는 묵묵히 피아노 건반을 응시합니다. 33초의 시간이 흐른 후 피아노 뚜껑을 닫습니다. 1악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잠깐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뚜껑을 열고 2악장 연주를 시작하지요.

이번에도 역시 연주자는 건반을 응시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콘서트홀의 무대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청중석에서는 약간의 기침 소리,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 한숨 소리, 에어컨 소리가 가늘게 들립니다. 오히려 벽면의 시계 초침에서 미세한 울림이 들리듯 합니다. 2분 40초의 2악장이 끝나고 다시 피아노 뚜껑 덮기.

마지막으로 1분 20초의 3악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연주하고 피아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악보를 경건하게 다시 품에 안고 청중에게 절을 하고 퇴장합니다. 관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연주회. 4분 33초의 공연 모습입니다.

작곡가 존 케이지는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음악이다.”

침묵은 우리의 귀를 활짝 열도록 인도합니다. 평소 연주회장에서 소음으로 인식되었던 기침소리, 부스럭 소리, 바람 소리를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죠. 케이지에게 있어서 침묵은 진정한 평화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재료인 셈입니다. 자신의 이름 케이지(Cage 새장)처럼 전통적 시스템이라는 새장에 수천 년 동안 묶여 있던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 대한 고정 관념과 음악과 소음에 대한 개념들을 모두 새장 밖으로 훨훨 날려 보냄으로써 진정한 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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