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사 극락전 기단의 다양한 장식 새김들. 대적사는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13에 위치해 있다.

길은 와인 터널 옆 감나무 밭을 끼고 이어진다. 소란스러운 인파의 그림자를 사뿐히 벗어날 즈음 감나무 잎새에 머물던 계절이 풀잎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최대한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길은 짧았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높은 석축이 보이고 절은 그 위에서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대적사(大寂寺)는 876년(신라 헌강왕 2년)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한 후 조선 숙종 15년 성해대사가 중수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돌계단에는 젖은 이끼가 법문처럼 자라고 절 문 안으로 불교도의 이상향인 극락정토를 표현한 극락전(보물 제 836호)이 보인다. 절간을 지키던 낮달 같은 독백 하나 마중을 나온다.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극락전은 크지 않지만 탄탄한 기단 위에 앉아 당당하다. H자형의 선각과 연꽃이 새겨진 기단은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연스럽게 풍화된 시간의 흔적과 살아 있듯 활기찬 움직임들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이의 그림 속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듯한 바다 생명체들이 소금기를 풍기며 절간을 활보 중이다.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동화 속 같은 그곳에도 고독과 가난, 죽음의 그림자가 있나 보다. 어미거북은 필사적으로 새끼를 데리고 극락정토로 가려고 애를 쓴다. 가파른 면을 힘차게 부여잡고 올라가는 거북의 네 발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반야용선에 오르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악착보살과 같은 숨결이 읽혀진다.

우측에는 거북 한 마리 연꽃 위에서 한가롭다. 영혼 없는 연꽃 위가 지상 최고의 낙원인 줄 알고 빈둥거리는 팔자 좋은 녀석, 어느 것 하나도 밉지 않다. 이토록 온전한 풍경이 있을까. 아이와 동물들의 경계 없는 혼재로 천진함의 세계를 표현했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의미심장해진다. 인생을 탕진한 바람 한 줄기 불어올 것만 같다.

극락전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 소맷돌에 새겨진 투박한 용비어천도는 세련되거나 장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맷돌과 계단의 아귀가 맞지 않은 것을 두고 옛날의 석재를 이용하여 고쳐 쌓은 거라 전문가들은 추측한다지만 나는 이 어색함이 오히려 좋다. 마치 추사 김정희가 죽기 사흘 전에 쓴 봉은사 판전을 보는 것 같다. 불심으로 빚어진 이름 없는 석공의 노숙함이 묻어나는 무구(無垢)의 경지라고나 할까. 오랜 숙련을 거쳐 그 법마저 지워버리고 해체하는, 깨달음의 세계도 이렇지 않을까.

어렵고 방대한 경전보다 시각적으로 단순화 시켜놓은 작품 앞에서 더 큰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혼탁한 정신을 치료해 주는 정화수 같은 세계에 시간을 담근 채 한참이나 행복하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느낌들, 가까운 곳에 보물을 두고도 가치를 몰랐던 나의 무지와 고비처럼 살다가는 찰나의 생에 대한 존재의 질문도 해본다. 햇살 눈부신 마당에 홀로 서서.

텃밭 너머 산신각 근처에서 일 하는 스님이 보인다. 주지 정혜(精慧) 스님이시다. 장화와 토시, 밀짚모자 아래로 흐르는 땀,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경내가 정갈한 까닭을 알았다. 사찰을 답사하는 동안 절도 주지스님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요사채에 앉아 스님과 대화를 나눈다. 방치하듯 낙후된 절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신 흔적이 역력하다. 좋은 기도처로 거듭나기 위한 스님의 의욕과 열정은 굳이 묻지 않아도 드러난다. 북적이는 와인터널 인파의 반이라도 찾아 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자 “모두 제 정진이 부족한 탓이지요.”무심한 스님의 말씀에 쓸쓸한 가을 공기 한 줌 출렁거린다.

“가난한 시절의 기도는 부처님의 공덕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기도가 더 기복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입시나 승진,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는 지극정성 기도하다 일이 해결되면 기도를 멀리 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절박함이 닥쳤을 때 하는 기도는 이미 때가 늦은 겁니다. 곳간이 비면 마음이 허전하듯 평상시 늘 기도로 삶을 충전하고 복을 지어야 하는데,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스님의 말끝은 흐려지고 나는 마당에 핀 국화를 보면서 찬란한 생의 한때를 장식할 그 향기를 더듬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침마다 백팔배로 하루를 열겠노라 다짐해 보지만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기도도 대상이 있어야 수월합니다. 집에서는 청정수 한 사발이라도 떠놓고 오욕의 탐욕을 씻는 마음으로 해 보세요. 기도도 욕심을 부리면 안 돼요. 욕심을 내면 혼탁해지고 힘들어지니 작은 것부터 설정해서 집중기도를 해 보세요. 하루 이십 분 정도 편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요.”

무너진 흙담 사이에 온기가 피어오르듯 희망이 생긴다. 철웅 스님의 법어집 한 권을 받아들고 내려오는데, 연꽃 위에서 놀던 거북 녀석이 꾸역꾸역 따라온다. 습은 그저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산사 가는 길은 여전히 외롭고, 계절은 또 이토록 아름답다.

굽이굽이 옛길 따라 산을 넘는데, 스님 말씀 자꾸만 밟힌다.

“눈이 밝은 자는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