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정<br> 한동대 4년ICT창업학부
한효정
한동대 4년·ICT창업학부

제2의 고향, 포항에서 나는 배우는(學) 삶(生)을 살아가고 있다.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 때, 한 교수님이 칠판에 큼직하게 단십백(單十百)이라고 쓰며 말했다. “인생에서 한 명의 스승과 10명의 친구와 100권의 책을 만나면 성공한 삶이다. 단십백을 대학 생활 때 이룰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 볼 것을 권한다.”

교수님 권유대로 나는 대학 생활을 통해 스승을 찾고 친구를 만나며 책을 통해 배움을 이뤄가고 있다.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그 자체다. 새로운 만남은 설레지만 어렵기도 했고, 수많은 관계 안에서 피상적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질문을 서로 연결해 가며 내 대학 생활을 만들어간다.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다. 우리 캠퍼스에는 RC(Residential Campus)라고 불리는 생활관 즉 기숙사가 있다. 학생 넷이 함께 방을 쓰고, 방끼리 팀으로 묶여 수요일마다 팀 모임을 하고, 다양한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의 네 사람이 한 방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도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러나 4개월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다 보면 갈등을 수면 위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친구의 경우 이런 갈등의 과정이 힘들어 학교 밖에서 자유롭게 살기도 하지만, 싸우고 풀고 정들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과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갈등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여러 친구의 다양한 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쓰여 미안하다는 사과를 반복하는 친구들, 할 말을 꺼내기보다 우선 참고 견디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끊어내듯 관계를 끊어 버리고 다시는 안 보는 친구들도 있다.

특히 요즘 트렌드인 ‘나의 행복을 찾아서’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아예 포기하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어우러지기 위해 굳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고, 맞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벅찬 세상이라고 딱 부러진 논리를 세우면서 선을 긋는다. 갈등을 드러내고 풀어보려는 시도들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져 그 과정은 생략한 채 더는 한쪽이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뚝 끊어지는 인간관계들이 많아지고 있다. 풍요로워 보이지만 가난한 인간관계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스스로 원해 더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종종 호구라는 말로 비하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너는 누가 챙겨?’라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일들을 감당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1학년 때 이런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새내기들이 나가서 놀고 싶을 때는 같이 차를 타고 바다도 가주고, 고민이 생겨 힘들어할 때면 학교를 몇 바퀴나 함께 걸어 주기도 했다. 처음 접하는 전공 공부를 도와주고, 필수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팀 모임에도 나와 열심히 게임에 참여해 흥을 돋워 주기도 했다. 4학년이 되어 보니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배움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나는 포항의 대학 생활에서 이런 질문하기 시작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더 사람답게 사는 길일까?’

이 질문과 내 삶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관계가 많아질수록 진심이 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관계에서 나오는 갈등에 침묵이 아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먼저 자기를 희생하며 아낌없이 내 것을 주는 것을 보았다. 나도 선배가 된 자리, 혹은 사회 초년생의 어느 자리에서 그런 환경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