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10월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에 대해 하늘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그 물음에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께서 추석날 외할머니 산소에서 대성통곡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 세상 살기 참 힘들다.” 굴곡 많은 삶 속에서 속으로 수없이 삭였을 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恨) 맺힘의 원인 중에는 필자가 가장 크게 차지했다.

지난 주말 청소를 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가방을 옮기다 어머니의 아픔 중 가장 큰 아픔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로워 보이지 않아 그냥 들었다. 그랬다가 중력보다 더 센 가방의 저항에 도로 내려놓고 말았다. 가방의 저항은 필자의 마음을 후려쳤다.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필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있었다. 가방의 무게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휴일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독서실로 향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소환했다. 필자는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잠시 밖에 나갔던 아이가 들어왔다. “아빠, 나 조금만 잘게!”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어제 잠을 못 잤어!”“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보았다. 가방은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았다. 그 큰 바위덩어리를 매일 메고 다녔으니 어깨와 허리가 오죽할까 싶어 당장이라도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필자는 가방 앞에서 망설였다. 그런 필자의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다.

시험(試驗)!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이 나라 시험은 줄 세기 이외에는 그 어떤 기능도, 역할도 하지 못한지 오래다. 교사들은 석차를 핑계로 문제를 최대한 비틀어서 출제하고, 이에 뒤질세라 학원들은 학교의 함정을 넘기 위해 오로지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는 이 나라 교육! 진정한 평가는 사라지고 괴물 같은 시험만 존재하는 시험 공화국! 그 공화국의 문이 10월에 열렸다.

아이의 가방을 옮기는데 저울이 옆에 있었다. 필자는 무심결에 올려보았다. 그 숫자에 필자는 다시 놀랐다. 여고생들이 만든 “대한민국 고등학생 가방 무게를 재어보았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오버랩 되었다.

동영상에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가방 평균 무게가 나온다. 그 무게는 6.56㎏! “쌀 30컵-쌀30인분, 1.5L 생수병 4.5개의 무게”

무게 재기가 끝난 후 제작자들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 책가방 이외에도 당신을 무겁게 하는 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고생들은 답했다.

“학원, 공부, 시험, (….) 입시, 대학, 내신, 스펙” 영상 중간에 친구들의 질문에 울어버린 여고생이 나온다.

그 학생을 울게 한 짐은 바로 “부모님의 기대”였다. 딸아이의 가방 무게는 10.09㎏! 이 무게는 그날 공부할 책들을 뺀 무게. 만약 그 책들까지 넣었다면? 거기에다 필자의 부담까지 얹었으니 아이의 어깨와 허리가 괜찮을 리 만무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10월의 하늘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아름다운 학생들! 그 학생들이 줄 세우기 식 시험에 병들고 있다. 이 나라 교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시험과 학생 앞에 당당한가? 그리고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개혁 앞에 떳떳하고 정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