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요즘 세간의 관심은 서초동과 광화문이 대표하는 광장이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대중과 정파의 대립이 도달한 종점이 서초동과 광화문이다. 그를 둘러싼 찬반으로 진영이 갈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빌미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가진 자들의 계급 내리물림이 얼마나 우심한가를 보여준다. 신분제 사회가 아니건만 한국에서 신분상승은 조선시대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가린다면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가늠하는 우행(愚行)이 될 것이다.

대중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지점은 ‘좌파가 그럴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우파나 극우의 행악질에 대중은 그러려니 한다. 그들의 부패와 무능, 타락과 패거리주의에 관대하다. 하지만 좌파나 운동권 출신이 일탈하면 비난과 욕지거리가 하늘을 찌른다. 이런 이중 잣대는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하나의 사안을 바라보는 정반대되는 시각의 차이와 그에 따른 정치행위는 살펴야 한다. 그것이 야기하는 대립과 갈등양상이 너무 첨예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세대갈등과 지역갈등에 계층갈등과 정파갈등이 보태져 사회통합이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과 진행 중인 경제전쟁, 난항을 겪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교섭, 하나의 중국문제로 터져 나오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우리의 대립과 갈등은 심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광장이 열려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 김일성 화형식, 반일 관제데모, 봉고 대통령 환영식에 광장으로 동원된 나로서는 열린 광장이 행복하다. 돈 받고, 종교 때문에, 정당이 동원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광장이 넘쳐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수백만이 모인 광장에서 사건사고 하나 없는 나라는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 점에서 광화문 광장의 추태와 망동은 부끄럽고 민망하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황망하다. 정치의 실종과 검찰권의 비대화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이 벌이는 죽기 살기 식의 대결구도는 분명 문제다. 이 나라 최고 지식인들이 모였다는 국회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극한대결로 치닫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제3지대의 부재에서 원인을 본다. 여야를 조정하고 아우르는 제3당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러리라고 기대한 정당은 풍비박산 나있다.

문제는 정당의 대립과 대결이 국민들의 일상에 틈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다. 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다. 거대양당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중소규모 정당이 일정정도 힘을 발휘하는 비례대표제가 자리 잡는다면 극한의 혼란과 대결양상은 치유되리라 믿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양당구조는 소임을 다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다양성이 증대한 만큼 정치도 그것에 준해서 바뀌어야 한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이 정치검찰을 비판하고, 공수처 설치를 외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가족단위로 어린아이 무동을 태워가며 평화적으로 민의를 드러냄은 치하할 일이다. 그러하되 양당제로 실종된 여의도 정치의 부활이 절실해 보이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