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과 국회
광장과 국회
  • 등록일 2019.10.09 18:51
  • 게재일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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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국회가 필요한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감시하고 국론을 조정하며 국사가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회가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국회가 국론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는가. 국사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가. 국민은 왜 여의도에 주목하기보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달려 갔을까.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광야에 모인 국민들에게 오히려 기대는 듯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아까운 공휴일과 금쪽같은 주말을 마다하고 길바닥에 앉은 국민들은 무엇이 저토록 억울한 것일까. 국회는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담아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인 사람들 숫자를 놓고 입씨름이나 벌였던 당신은 국민의 생각이 무섭기는 했는가. 광화문과 서초동에는 진심어린 주장이 있고 진정 가득한 절박함이 있다.


국민은 알고 있다. 들은 만큼 알게되었고 헤아린 만큼 진실에 접근한 국민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 알고 있다. 가짜뉴스와 억지동원도 분명히 보았고 어린이들이 선동에 이용된 모습도 보고 말았다. 확인없이 기사를 날리는 언론 관행도 알아버렸고 급하면 슬쩍 흘리는 수사진의 모습도 눈치채 버렸다. 개혁이 급선무임을 충분히 들었고 그게 왜 필요한 것인지도 보고 말았다. 진보정치의 두 얼굴도 목격하였고 보수정치의 고집스러움도 확인하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숨길 수가 없다.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누리던 기득권력에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소임에 따를 것을 국민은 기대하고 명령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꾸어야 할 일들이 가득한 곳이 아닌가. 변화가 기대되는 실체가 확인된 바에야, 더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

국민이 보고 있다. 태풍피해도 아랑곳 아니하고 서울로 달려간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천 날이 넘도록 답 한 자락 듣지 못한 상처는 오히려 생생하다.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수사를 하지 말도록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당신을 보고 있으며, 마약범죄혐의가 짙은데도 경찰이 풀어준 명문가 자녀를 모두 보았다. 촛불의 희망으로 이어받은 정권이 상응하는 능력으로 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국민은 느끼고 있다. 그 밖에 나라에 닥친 어려운 자락들도 깨알같이 보고 있다. 어려운 과제들이 산더미인데, 정부 기관 한 군데 개혁에 더는 휘둘릴 수가 없다. 권력이 주도한 ‘광장파시즘’이 아닌 것은 거리에 나가면 분명히 보인다. 답답하고 목마른 시민의 함성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쏟아내는 광장의 뜨거움은 그곳에 나서면 금방 보인다. 폭력과 광기는 기억 속에만 있지 않은가. 바램과 열기는 확인되었다.

국회가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면, 광장의 목소리와 함성의 진정성을 담아 국회가 돌아가야 한다. 당신이 대표하는 국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국정에 임해 주시라. 어느 여검사의 표현처럼 ‘당장 없어져도 할 말이 없을’ 국회가 되면 되겠나. 곧 선거 아닌가, 지금부터 소임에 충실해 주시라. 나라와 국민을 바라보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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