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건너며 남긴 말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이 나왔지만, 남북한 교류나 협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들었던 생각,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전자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지난 6일,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만에 재개된 북미대화라서 전향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스톡홀름 협상이 종료되었다. 북미대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대외환경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미대화 결렬이 남북한 관계를 좌지우지 하도록 둬서도 안된다.

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북미대화 결렬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라며 “김정은 몸값만 올려놓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하였다. 청와대는 “북미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통일 문제는 국내정치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숙제다. 내부통합이 전제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통일 관련 논의는 공허하다.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이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인 이념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조국사태로 거리정치가 재연되고 여야가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이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는 46.4%만이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지지하였다. ‘사회갈등 해소 및 국민통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지난 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광복100주년이 되는 2045년 ‘One Korea’가 되자는 비전이 현실화 되려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통일 과제를 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셈법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남북한 정상간의 공동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내외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통일 비전을 확실하게 끌고 갈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0·4기념 심포지엄에서 나온 “중재자나 촉진자의 역할을 너머 쇄빙선을 띄우고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시점에 주는 울림이 크다. 격동의 시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일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