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울릉도라는 천국, 그곳의 세 집 이야기

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나리분지 전경.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전설적 포크 가수 이장희, 울릉도에 터잡고
현포리 산기슭 동산 가꿔 ‘울릉천국’이라 불러

울릉도 개척 전 토착민들 살던 투막집들은
이젠 중요한 문화재로 자리잡아 관광객 끌어

세계 최고 호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
고가의 숙박료 아깝지 않은 환상적 시설 자랑

‘울릉천국’ 팻말. 천국 가는 길처럼 평온하다.
‘울릉천국’ 팻말. 천국 가는 길처럼 평온하다.

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약속, 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 터질 듯이 충만한 사랑의 고백! 이 아름다운 세레나데는 1970년대에 수많은 연인들을 꿈결 같은 낭만으로 인도했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남루해도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받는 이들의 거주지는 끝내 천국이다. 그러니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는 ‘터질 것 같이 뜨거운 사랑’의 복음성가인 셈이다.

저 노래를 부른 가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가 울릉도에 산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곳이 ‘천국’인 줄은 몰랐다. 울릉도 북면 현포리 61-2번지에 천국이 있다. 거기 전설적인 포크 가수 이장희가 산다. 지난 2004년, 울릉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현포리 산기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이 가꾼 동산을 ‘울릉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른 잔디밭과 알록달록한 꽃덤불, 해와 구름을 되비추는 맑은 연못, 그리고 울릉도의 하늘과 바다가 있는 이곳 울릉천국에 온 순간, 나는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천국이 맞구나,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그런데 사실 이장희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래에 평리침례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천국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불쾌하게 여기진 않을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천국과 교회는 서로 정답고 다정하게 이웃해 있다. 작은 적벽돌 건물에 흰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쁜 교회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김해용 감로의 순교기념비가 놓여 있기도 하다.

 

현포리 ‘울릉천국’의 가수 이장희 동상. 뒤의 파란 지붕집이 이장희의 집이다.
현포리 ‘울릉천국’의 가수 이장희 동상. 뒤의 파란 지붕집이 이장희의 집이다.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동화책과 만화영화가 묘사하던 풍경 그대로 천국은 나를 반겨주었다.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느덧 조화로운 화음을 이루고, 어디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단순히 깨끗한 자연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만 천국으로 호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2016년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이장희가 자신의 땅 500평을 기증하자 경상북도와 울릉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공연장과 카페,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음악과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음의 천국’, 아트센터는 울릉도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사색과 휴식을 제공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이장희는 통기타를 메고 종종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을 구경 온 관광객들과 정겹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부재 중, 파란 지붕을 얹은 소박한 집 마당엔 나비 한 마리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울릉천국에서 내려와 나리분지로 향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 지대다. 1만여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며 형성된 이곳 분지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비교적 빠르게 오를 수 있고, 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분지의 장엄한 광경으로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해발 400미터 고지대의 화구 분지에 마을을 이뤄 삼나물, 더덕, 마가목, 참고비, 명이나물 등을 재배하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울릉도가 자랑할 만한 명소인 것이다.

 

옛 울릉도 토착민들의 집인 나리억새투막집.
옛 울릉도 토착민들의 집인 나리억새투막집.

울릉도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섬’이 된 것은 1884년 고종이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백성들에게 이민을 장려하면서부터다. 물론 1,500년 전 고대국가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긴 했지만 조선조가 들어선 이후 수백 년 동안 빈 섬으로 방치되었다. 19세기말 개척민들이 섬에 왔을 때, 오랜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산야에 자생하는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어 연명하는 것을 보고 ‘나리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게 나리분지 명칭의 유래다. 먼 옛날 화산 폭발을 잊었는지 나리분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분지를 둘러싼 산들 역시 짙푸른 녹음으로 화산의 기억을 감추고 있었다. 분지를 조금 걷다가 나리너와투막집과 억새투막집 앞에 멈춰 섰다. 투막집은 울릉도 개척 전 이곳 토착민들이 살던 재래 가옥 형태인데, 우데기로 외벽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1940년대에 옛 형태대로 지어진 집이 아직까지 남아 울릉도의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다.

투막집 마당을 거닐며 이곳에 살았을 옛 사람의 어느 하루를 떠올려 본다. 뒤주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려 술을 담그면,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다가 귀뚜라미 울음 먹고 달짝지근한 빛으로 찰랑였을 것이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진 그는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고, 반짇고리로 구멍 난 속곳들을 기우고,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을 것이다. 뒤란을 흔드는 바람에 잠 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면 투막집 툇마루에서 홀로 탁주 마시던 이의 텅 빈 마음에 외로운 달빛이 내려와 앉았을 것이다.

나리분지와 투막집을 탁주 같은 햇살 속에 남겨둔 채 북면 추산리 바닷가로 향했다. 추산 해변에서는 울릉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상 바위로 꼽히는 코끼리 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이곳 추산 절벽에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세계적인 건축가 김찬중 교수는 송곳산 옆 벼랑 위에 해와 달과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하얀 건축물을 설계했고, 이 건물은 완공된 후 영국의 유명 건축잡지 ‘월페이퍼’에서 선정한 ‘2019년 세계 최고의 호텔’이 되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철근을 뼈대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신소재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 덕분인데, 초고강도 콘트리트를 특별 제작한 거푸집에 한 번에 부어 통째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세계 건축계 및 콘크리트 학계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북면 추산리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의 빼어난 경관.
북면 추산리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의 빼어난 경관.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는 펜션형과 풀빌라형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침대방과 온돌방, 패밀리룸 등으로 구성된 펜션형은 모든 객실에서 코끼리 바위 너머로 붉게 밝혀드는 석양의 황홀한 축제와 수평선 위로 은빛 달이 전설 고래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야외 테이블과 월풀 욕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방 내부는 천정이 둥글고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침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며, 1박 가격은 4인 기준 40~50만원이다. 리조트 측은 “땅과 하늘의 기운, 음양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릴 수 있다”고 펜션형 객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는, 베일에 싸인 풀빌라 때문이다. 코스모스리조트의 풀빌라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이라는 이른바 ‘버킷리스트’ 전략과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이곳 풀빌라는 4인 기준 1박 숙박요금이 1천만원이라고 한다. 울릉군청 관계자들에게 들은 내용 또한 풍문과 일치했다. 환상적인 경관과 최고급 시설은 물론 서울 유명 호텔 요리사의 출장 요리까지 ‘맞춤형 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하룻밤 묵는 데 천만원이나 하는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아마 나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평생 해소하지 못한 채 저 우주로, 캄캄한 코스모스로 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실천하기 위해 패가망신을 무릅쓰고 예약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때 울릉도는 내게 진정 ‘울릉천국’이 되리라. 그러나 부디 미래의 그녀가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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