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생산돼 현재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이 말은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다른 기준으로 단정하는 이중 잣대를 지닌, 남에게는 가혹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뜻한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我是他非(아시타비)’보다도 한층 더 비틀린 모순을 일컫는다.

만 두 달을 넘기고 있는 ‘조국 대전’이 마침내 백병전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논란은 원래부터 좌우 이념대결의 쟁점거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고위공직자 검증과정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수위 높은 파열음 정도의 잡음이었다. 그러나 ‘조국’을 지키려는 세력은 마치 ‘조국’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권력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으로 행동했고, 마침내 온 국민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였다.

백병전에서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이느냐 죽느냐의 이분법만 남는다. 뒤엉켜서 상대방을 죽일 생각에만 빠져들게 된다. 확증편향 사고체계 아래에서 마침내 이성은 마비되고 투철한 ‘내로남불’의식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무한 작동하는 강시처럼 행동하게 된다. 길거리로 몰려나와 ‘맹종하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동의 노예들이 부르는 무궁동(無窮動) 돌림노래가 짜증을 부른다. 거듭되는 그들의 백해무익 집회는 소름 끼치는 폭류다.

‘조국 수호’를 부르대는 이들 사이에서 이미 피의자 정경심의 컴퓨터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 보전’으로 둔갑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인권 탄압’이 됐으며, 연구논문 제1저자 허위등재와 표창장 위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던 대통령은 불과 두 달 만에 말을 바꿔 스스로 혼란한 진영대전의 진앙지임을 증명했다. 동원정치의 마법에 취한 채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는, 정말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희한한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가.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참여연대의 침묵에 반발하여 SNS에 “시민사회에서 입네하는 교수, 변호사 및 기타 전문가 생퀴들아. 권력 예비군, 어공 예비군 생퀴들아. 더럽다 지저분한 놈들아”라고 울분을 토했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대중을 동원하는 경쟁은 그만두고 조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고언을 내놨다.

유치한 동원정치 숫자놀음에 빠진 세력들의 편집적 행태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요소는 자기들끼리만 소통하고, 다른 말은 도무지 듣지 않는 의식구조다. 무엇보다도, 선악 개념은 물론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마저 일제히 사라진 집권여당의 ‘선동정치’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시타비, 내로남불의 혼돈을 획책하는 추악한 횡포가 역겹다. 정의-불의의 변별력마저 모조리 거세된 빛바랜 이념의 포로들이 펼치는, 이 더러운 합창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파멸적 행군을 멈출 양보의 리더십은 이 땅에 정녕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