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로 가는 기차안에서 있었던 일화다. 한 승무원이 기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큰일났군, 큰일났어.”이윽고 기차의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나서 승객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말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의 안내방송에 의하면 분명 브뤼셀로 가는 기차가 맞았다. 그렇다. 사실은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닌 승무원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승객 모두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를 지니고 있었다면 “내가 기차를 잘못탔나?”하고 생각했겠지만 이 승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지닌 나머지 이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기차였기에 망정이지 그 승무원이 운전하는 차였다면 승객 모두는 브뤼셀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게됐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은 우리의 삶이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교훈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조국 사태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우려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최초’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 장관 후보자 임명·철회 청와대 청원, 장관 후보자 청문회 전후 아내 기소,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제1야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삭발투쟁, 대학생들의 임명 반대 촛불집회, 검찰개혁 주장 촛불집회 등 장관 한 명 때문에 빚어졌다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교수의 말 처럼 ‘청와대가 조국 장관을 손절매하는 시기를 놓친’ 것일 수 있다. 조국 사태는 당초 ‘평등·공정·정의’를 강조해 온 진보진영의 대표주자인 조국 장관이 평소 언행과 달리 가족 문제와 관련해 특권과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누려온 듯한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비롯됐다. 특히 조 장관 아내의 사모펀드 투자나 자녀 입시와 관련된 일부 의혹은 위법시비에 휘말렸다. 이쯤되면 예전의 인사청문회였다면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거나 추천을 철회하는 조치로 마무리되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장관임명을 강행하면서 온 나라가 진영논리로 갈라졌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최근 지역 언론사 특강에서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는데 지금 기회가 평등한가. 안 그렇다. 과정이 공정했나. 아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그럼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 이게 뭐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에서 자기확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실망스러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를 말하는데, 갈등이 심해지고, 청렴을 말하는데,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민생을 말하는데 생활이 어려워진다. 정치현실에 흔히 나타나는 모순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내가 믿고있는 확신이 과연 옳은 지 되짚어보는 성찰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