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원로와 전문가들이 “한국 실물 경기는 장기침체 경로에 진입했다”면서 경상수지가 더 나빠지면 금융·외환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하방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엄중히 생각하지만, 경제위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우려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정책은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의 각별한 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달 말 민간 싱크탱크 니어(NEAR)재단이 연 세미나에 참석한 경제계 원로들은 실물경제를 억누르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제조업·노동생산성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글로벌 공급망 파괴와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2011년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제조업 성장률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졌고 장기침체 위험도 가중됐다”고 분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일본과 다른 형태의 장기불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경제가 속으로 심각하게 골병이 들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집권세력 내부의 위기의식 부재,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만연, 노조 세력의 득세 등과 함께 지독한 불안감과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해외로 나가는 직접투자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국내 설비투자는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일본식 장기불황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온 나라가 ‘조국 사태’ 소용돌이에 휘말려 두 달 동안이나 진영대결로 지새고 있는 사이에 우리 경제가 회복 불능의 진창에 처박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걱정인 것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가장 먼저 쓰러지는 계층은 하루하루 일상이 버거운 서민들이다. 지금 천 길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칠흑 어둠 길을 눈감은 채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