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우수(憂愁)의 계절, 가을이다.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에 공감이 가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음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니 말이다.

정부·여당이 하는 짓을 보면 화가 나서 죽겠는데, 한국당도 변화와 혁신에 소홀하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에게 사기당하고, 보수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야 정당 모두가 싫다는 무당파(無黨派)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마음 둘 곳 없는 유권자들이 많다.

부정과 비리가 보수·우파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보·좌파는 한 수 더 뜬다. 얼굴도 붉히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는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민주당 대표는 “정권을 절대로 뺏기면 안 된다”고 벌써부터 내년 총선전략 마련에 분주하고, 한국당은 국민의 정부 비판이 한국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데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여야 모두가 고달픈 민생에는 안중에 없고 총선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나라는 극심한 대결과 분열로 인해 내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물론이고 언론과 지식인들까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북대화에는 그렇게 적극적인 대통령이 왜 남남대화에는 소극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진영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정치꾼(politician)들의 주된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공정·정의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이고 아니면 불의라는 궤변이다. 너를 청산해야 내가 권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착각했던 것은 사익(私益)밖에 모르는 정치꾼을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참된 정치인(statesman)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정치꾼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주권자로서 그들을 감시·감독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 국민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만이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당파여! 내 마음 갈 곳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희망이다. 무당파는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힌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정의파’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있기에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가 두 동강 나지 않고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당신들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casting vote)’까지 쥐고 있으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당신들의 올바른 인식과 선택이야말로 ‘한국정치에서 희망의 촛불’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