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지난 1925년 소설가 박영희(朴英熙)가 발표한 ‘사냥개(원제는 산양개)’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자린고비 백만장자 정호가 양심의 가책과 연결된 연상작용에서 점증한 몽환적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한밤중 금고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굶주린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려 죽는다는 내용이다. 박영희는 이 작품을 쓴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에 가담했다.

대한민국이 온통 ‘사냥개’ 딜레마에 빠졌다.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온 ‘조국 논란’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비화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조국 일가의 놀라운 편법 또는 불법 의혹인데 순식간에 친문(親 문재인)대 반문(反 문재인) 대전(大戰)으로 변질돼 버렸다. 대통령이 검찰에 ‘성찰하라’고 한 말씀 하자 동원된 친문들이 서초동에 모여 실력행사를 벌였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은 왜?”, 또는 “윤석열은 왜?”하고 의문부호를 붙인다. 멋진 진보지식인으로만 비치던 조국은 언행이 도무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는게 낱낱이 드러났다. 장관이 되고 나서도 깜냥이 안된다는 증거가 속출한다. 자택 압수수색 팀장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은 공사(公私)조차 구분 못하는 인물임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검찰을 ‘증거조작단’으로 간주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궤변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는 조국의 아내 정경심의 ‘PC 무단 반출’을 놓고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찰 측에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

유시민의 논리가 참이 되려면, 최소한 검찰은 지금까지 ‘적폐청산’이라며 잡아들인 전직 대통령들과 수많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숱하게 증거를 조작해 기소했다는 말이 된다. 유시민은 나아가 윤 총장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일제히 ‘배신자’로 몰아간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벼락출세한 사람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보복 정치의 ‘으뜸 사냥개’로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총장이라는 최고봉에 올랐는데 검찰의 힘을 반 토막 내려는 ‘개혁’의 칼을 받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영락없이 벼슬과 조직을 바꿔먹은 배신자가 될 판이다. ‘오직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신념의 윤석열은 어쩌면 자신의 처지가 토사구팽(兎死狗烹) 직전에 몰린 사냥개 같을지도 모른다.

‘검찰 개혁’은 독립성 보장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이 말하는 ‘검찰 개혁’은 정권의 말 잘 듣는 사냥개를 만들겠다는 엇나간 개혁임이 분명하다.

“살아있는 권력까지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보태기 시작했다. 누가 물려 죽을지 모르는 이 혼란한 ‘사냥개’ 딜레마의 끝은 대체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