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학기 초에 두 남학생이 주먹다짐을 했다. 친구들이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한 아이는 눈이 뒤집혀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코피가 터졌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로 과하게 싸우지 않는다. 두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친 곳을 치료하고 싸운 이유를 물었다. 한 쪽에서 “패드립”이란 말이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 욕을 했어요. 니 에미 어쩌고 저쩌고요.”

패드립.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 자신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패륜적인 언어를 가리킨다. 시사상식사전을 찾아보니 2010년경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걸 어디서 배웠어?” “유튜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패드립은 대체로 “니 에미…, 니 애비….”로 시작한다고 한다. “니 에미 애자(장애인)지. 니 애비 없지.” 이게 애들 입에서 나올 소린가. 기가 막혀서 먼 하늘만 바라봤다.

요즘은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청소년들의 욕설을 자주 듣는다. 학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PC방에서, 식당에서 온갖 욕들이 날아다니고 튀어나온다. 욕에도 수준이 있다면 청소년들의 욕하는 습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다가 자녀의 단톡방이나 문자메시지, 연습장에서 육두문자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부모도 적잖다.

정치인들의 막말, 어른과 부모의 위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욕설, 패드립, 막말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병들었다. 학급장기자랑 시간에 동요를 부르고 시를 암송하는 아이는 사라졌다.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는 명분만 남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변명만 남았다.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감화시키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학교 여건은 녹록치 않다.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말은 물과 같다. 물이 오염되면 뭇 생명이 병든다. 말이 오염되면 수많은 정신이 병든다.

며칠 전에 학부모에게서 패드립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반 친구들에게 패드립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치를 떨었다. 다음 날 패드립을 한 아이들은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했다. 그게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패드립과 막말과 욕설이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칼보다 더 위험한지,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알고 그런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얼마 전 수원 어느 노래방에서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네티즌들은 소년법을 개정하라며 또다시 국민청원을 냈다. 갈수록 청소년들의 인성은 메마르고 영혼은 거칠어지고 있다. 패드립이란 말이 서글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몇몇이 욕설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 배웠을까? 어쩌면 좋을까? 적어도 친구의 부모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패드립만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