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생각학교ASK 연구원

신뢰도가 낮은 출처에서 나온 메시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설득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수면자 효과라고 한다. ‘소문은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들었는지 잊어버린다.’는 외국 속담에서 비롯한 심리학 용어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할 때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 경고하는 용어다.

정보가 폭증하는 현대 사회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말이나 지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때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내 기억창고에 흘러들어 진짜와 가짜의 분별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반복해 듣다 보면 진실이 아니라 해도 결국 진실로 둔갑해 힘을 발휘한다. 불분명한 정보나 지식이 꾸역꾸역 흘러들어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관념이 선입견이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고정관념으로 인격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다.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들어오는 잘못된 정보나 관념은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최소한 긴장하며 확인해 보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몇 년째 독서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책 안 읽는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해요. 만나서 대화를 나눠도 재미가 없어요.” 책에 재미를 붙이고, 한 권 한 권 독파해 나가고 토론하면서 즐거움에 빠져 악의 없이 던지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의문을 제기해 본다. 과연 그럴까? 반드시 책을 읽어야 말이 통하는 것일까?

책을 많이 읽을 형편은 못 되지만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도 책을 조금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진리인 양 상대를 설득하고 계몽하려는 교만함이 있었다. 책이나 관계를 통해서 무의식 가운데 수면자 효과로 흘러들어온 얇은 지식은 심지어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편견까지도 만들어 낸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속에서 부딪히는 많은 불협화음도 나중에 찬찬히 따지고 보면 잘못된 정보나 오해가 유발한 선입견이 원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모호한 대답,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적당히 혼합해 내 생각으로 예측한 ‘카더라(그렇다고 하더라)’통신에 우린 얼마나 길들어 있고 희생당하고 있는가?

내게는 수면자 효과에 기인한 고정관념은 없는가 따져봐야 한다. 확인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근거 없는 정보들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사사로운 개인적 감정을 기준으로 눈 가리고 귀 닫고 쏟아지는 정보를 분별없이 받아들인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들의 고민도 이런 염려 때문이다.

정보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과연 어떤 것들이 진실이고 어떤 것들이 가짜인지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최소한 확인 가능한 정보인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선입견으로 판단을 잘못 하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시도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작은 실천 사항은 이렇다. 첫째, 하지 않아도 될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말자. 둘째, 내가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진짜인 것처럼 전하지 말자. 셋째,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넷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속뜻을 살펴보는 정성을 갖자.

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분명히 갖고 있지만 새로운 일이나 환경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슬픈 일이다.

내 지식을 도둑맞지 않도록, 거짓이 잘못 침범하지 않도록 깨어나야 한다. 수시로 진실인지 점검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라인홀드 니버를 따라 기도한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실천하는 용기를 주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침착함을 주소서. 내게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