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충2리 손국자(73·여)씨의 논에서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이 손씨와 함께 벼 세우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4일 오전 8시 30분. 포항시 남구 오천읍행정복지센터에 ‘새빨간’ 옷을 입은 젊은 청년 100여 명이 얼룩무늬의 차량에서 내렸다. 다부진 체격에 등 뒤로 ‘해병대’ 자수가 박힌 옷을 입고 있었다. 해병대 장병들은 부대에서 쓰고 온 위장모에 동사무소 직원들이 나눠주는 장화와 장갑으로 중무장(?)했다. 그리곤 3∼4명씩 팀을 이뤄 각기 차를 타고 어디론지 떠났다.

오전 9시 포항시 남구 문충2리 마을회관 앞에서 10명의 건장한 해병대원들이 헤쳐모였다. 이들의 오늘 과제는 손국자(73·여)씨의 논에 누워있는 벼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잠시 교육를 받은 장병들의 오른손에는 총 대신 마른 볏짚 묶음이 들려 있다. 오늘의 전장인 논으로 뛰어든 해병대원들은 질퍽한 논바닥에 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이지만, 묵묵히 태풍에 쓰러진 벼를 세우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개중에서도 선임해병이 “다치지 말고 하자”며 후임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한 과수농가에도 ‘빨간명찰’이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주말 제17호 태풍 ‘타파’가 지나간 이후, 낙엽처럼 떨어져 있는 사과와 배를 주워담아 옮기는 일을 ‘명(命)’ 받았다. 허리를 구부리면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백번 반복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오전과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해병대원들의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이를 바라보는 과수농가 주인은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운 웃음을 지었다.

포항의 특산물인 포항 시금치와 부추농가도 이번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찢겨 나가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물론, 24일 이곳에도 해병대원들의 손길이 닿았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해병대 수색대대 장병들이 현장에 투입됐다. 2인1개조로 무너진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해체해 옮기는 작전을 수행했다.

주민들이 준비해 준 달콤한 새참을 맛보면서 잠시 쉰 이후에는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안을 마른 흙으로 덮는 작업도 했다.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가 외부보다 훨씬 더운 탓에 힘들 법도 했지만, 장병들은 힘든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열심히 전투에 임했다.

포항 전 지역에서 대민지원을 한 해병대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폐농의 실의에 빠진 농민들을 도왔다. 농민들은 부대로 복귀하는 해병대원들과 악수하고 포옹을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해병대원들은 “내일 또 뵙겠습니다”라며 경례를 했다.

이날 해병대 장병들의 도움을 받은 손국자씨는 “태풍이 지난 들판을 보고 너무 속상했지. 일할 사람은 없고 어떻게 할 수 있나. 밤에 잠도 잘 안왔어. 다된 농사 몽땅 버리겠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군인아저씨들이 와주서 너무 반가웠어.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해병대1사단(사단장 김태성)은 24일 포항 전역에 총 1천600여 명의 장병들을 투입, 대민지원을 했다. 이날 해병대 장병들은 벼 세우기와 낙과 수거작업, 배수로 정비 및 해안 환경정화 활동 등을 진행했다. 해병대1사단은 오는 27일까지 태풍 피해복구 대민지원작전을 펼칠 계획이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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