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의 중심에는 컴퓨터가 있었으나 벌써 낡은 유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정보와 아날로그

아침에 눈을 뜨면 태양이 떠 있고, 알람이 울린다. 이것들은 실제로 일어났고, 이 실제적 일을 우리가 스스로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들, ‘태양이 뜬다’는 사건을 접하고, ‘아침에 태양은 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과 사실은 ‘나’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이 경험은 ‘나’ 뿐만 아니라 ‘너’ 혹은 ‘그’의 경험까지 포함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건과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이러한 경험들 중 어떤 것은 기억된다. 기억되는 것들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정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다.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는 연인은 일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보는 지식이기도 하다.

정보는 직접 말로 전달할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쓸 수도 있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파했으나 정보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다양해졌고 복잡해졌다. 축음기와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새로운 정보전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소리를 저장하는 것 바로 녹음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 방법은 간단하고 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소리는 진폭을 가지는 파동이다. 즉 말을 하면 공기가 떨리게 되는데 이 진동을 감지해 함께 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바늘로 레코더판에 그 파동을 똑같이 새기면 된다.

△정보기술의 혁명, 디지털

다시 말하지만 정보는 의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녹음을 하면 잡음까지도 기록된다. 그렇다면 이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정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녹음된 것 안에는 녹음하고 싶은 것과 녹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간파한 클라우드 섀넌은 자연적인 것 전체가 아니라 정보만을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했다. 섀넌이 찾은 방법, 그것이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의 어원인 디지트(digit)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손가락은 접었다, 폈다 하는 방식으로 수를 센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구부린 정도에 따라 저건 0.5, 저건 0.7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0’ 다음에 ‘1’일 뿐 중간값은 없다. 이렇게 어떤 값을 딱 떨어지게 끊어서 표시하는 방식을 디지털이라고 부른다.

섀넌 식으로 말하자면 중간값은 일종의 노이즈다. 그러나 어떤 중간도 없이 딱 떨어지는 값은 정보다. 섀넌은 정보만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저장용량을 극대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은 이렇게 저장된 정보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아날로그 정보에는 소리, 그림, 사진, 문자, 필름영화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그 특징에 맞는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문자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종이가 필요하며, 소리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레코드판이나 테이프가, 사진이나 필름영화는 필름이 필요하다. 이렇게 정보가 저장되는 공간을 매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날로그 정보와 달리 디지털 정보는 저장을 위한 특별한 매체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메모리 칩에 형식과 성질이 다른 정보를 한꺼번에 담아 둘 수 있다. 정보를 전송하고 공유하는 일이 간단히 이뤄진다. 아날로그 시대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워크맨과 음악 테이프를 몇 개씩 가지고 다녀야 했다. 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 필름이 필요했고, 이것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인화해야 했다. 하지만 CD플레이어는 음악을 듣는 것을 훨씬 간편하게 만들었으며 캠코더는 필름 없이 찍을 수 있었고, 인화하는 과정 없이도 찍은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걸로 음악도 듣고, 영상도 찍고 송신도 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정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결합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각광 받고 있는 VR여행은 집 쇼파에 앉은 채로 그랜드캐넌을 둘러볼 수 있고, 세계최대 산호초 지역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나 중국의 만리장성을 여행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갈 수 없는 화성이나 달 탐험도 가능하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기술이 자리 잡는 시간

디지털 정보기술은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이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편견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일상화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체가 그런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 컬러 TV를 보려면 기존의 수신 방식을 바꿔야 하고,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기지국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학자의 노력과 자본은 이런 기술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은 아무리 편해도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기를 처음 본 사람들은 사진에 찍히면 영혼을 빨아들인다고 거부했다. 핸드폰이 등장했을 때 전자파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용을 꺼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공학은 기술의 발전만을 생각했다면 이제 공학은 인간의 사고나 행동방식과 인식까지로 그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