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은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것이 원칙이다
곰탕은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것이 원칙이다
  • 등록일 2019.09.23 20:00
  • 게재일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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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하지 않은 ‘대갱’을 으뜸으로 여긴 이유는

곰탕은 설렁탕과 달리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것 이 원칙이다.

깊고 무겁다. 곰탕 이야기다.

곰탕은 ‘大羹(대갱)’이다. ‘큰 국물’ ‘바탕이 되는 국물’이다. 제사상에 올랐다. 지금도 ‘탕국’으로 제사상에 오른다. 역사도 깊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용한 음식이고 이름이다. 우리도 오랫동안 제사상에 올렸고 지금도 곰탕은 저잣거리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정작 중국에서는 사라졌다.

‘조선왕조실록_세종실록_세종오례_길례_찬실도설’에서 전하는 ‘대갱’에 대한 설명이다.



(전략) “대갱(大羹)은 육즙(肉汁)뿐이요, 양념[鹽梅]이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저민 날고기뿐이니, 다만 그 고기를 삶아서 그 즙만 마시고, 양념을 칠 줄은 알지 못하였다. 뒤 세상 사람이 제사 지낼 적에는 이미 옛날의 제도를 존중하는 까닭으로, 다만 육즙만 담아 놓고 이를 대갱이라 이른다”고 하였다. (후략)



양념[鹽梅, 염매]은 소금과 매실이다. “염매가 없다”는 것은 양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양념하지 않은 고깃국물이 바로 대갱이고 오늘날 곰탕이다. 양념은 음식 맛을 도드라지게 한다. 왜 양념하지 않은 것을 최고로 쳤을까? 왜 대갱, 곰탕을 으뜸으로 여겼을까?

‘예기 교특생(禮記_郊特牲)’에 “대갱을 조미하지 않는 것은, 그 바탕[質, 질]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기를 곤 국물 맛이 바로 대갱의 바탕이다. 바탕 맛, 기본 맛이다. 고깃국물의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조미하지 않았다. ‘본(本)’은 기본이다. ‘질(質)’은 사물의 근본이다. 질박(質朴), 소박함이다. 본질을 지키는 음식이 바로 곰탕, 대갱이다.

고기는, 상상 이상으로, 귀했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도축하면, 고기를 연기로 훈연하거나, 삶아서 보관했다. 육포(肉脯) 혹은 수육[熟肉]이다. 삶으면 국물이 생긴다. 이 국물이 대갱이다.

조선 시대 기록에는 ‘육즙(肉汁)’이 자주 등장한다. 대갱, 육즙, 곰탕은 같다. 굳이 육즙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대갱은 무겁고 깊다. 국왕이라 해도 ‘대갱을 먹는다’고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대갱 대신 육즙이라고 표현했다.

세종 4년(1422년), 상왕 태종이 돌아가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1월의 기록이다. 제목은 “임금이 허손병이 있어 대신들이 육선 들기를 청하다”이다.



임금이 허손병(虛損病)을 앓은 지 여러 달이 되매, (중략) 병세는 점점 깊어 약이 효험이 없으니, 유정현, 이원, 정탁 등이 육조 당상(六曹堂上)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청하기를,

“(중략) 옛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을 상해(傷害)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 ‘육즙(肉汁)으로써 구미(口味)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세자가 어린데, 전하께서 상경(常經)만 굳이 지키어, 병환이 깊어져서 정사를 보지 못하시게 된다면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의 복이 되지 않습니다.”(후략)

 

서울 명동 ‘하동관’ 곰탕. 하동관은 이제 80년이 되었다.
서울 명동 ‘하동관’ 곰탕. 하동관은 이제 80년이 되었다.

허손병은 오늘날의 당뇨다. 이해 태종이 돌아가셨다. 아버지, 스승이며 권력을 승계해준 이다. 당연히 소박한 음식, 소선(素膳)이다. 고기, 대갱(곰탕), 육즙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게다가 효자다. 거의 곡기를 끊다시피 한다.

세종은 고기 마니아다. 육선(肉膳), 고기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던 이다. 몸이 수척해지고, 드디어 당뇨까지 나타난다. 육조에서 고기반찬을 권하지만, 세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육조의 당상관들과 대간까지 나서서 국왕에게 음식을 권한다. 그중 ‘육즙’이 나타난다. 신하들은 “죽은 이를 위하여 산 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는 옛 가르침을 꺼낸다. 그까짓 고깃국물이라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고기 대신 고깃국물[육즙]이라도 중하게 여겼다.

고기와 육즙을 피했던 세종이 거꾸로 신하의 육즙을 챙긴 경우도 잦았다.

세종 22년(1440년) 1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제목은 “최칠 중에 있는 전 참판 권맹손에게 육식을 권하다”이다. ‘최질’은 상중에 입는 옷으로, ‘최질 중’은 상중이다.



(전략) 경상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이제 들으니, 전 참판 권맹손이 최질(衰絰) 중에 있는데 오랜 병으로 몸이 수척하여서 소식(素食)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솔하게 권육(勸肉)할 수는 없다. 이제 의원 조흥주의 말을 들으니, 만약 과연 몸이 수척하다면 반드시 육즙(肉汁)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경이 전지(傳旨)라고 칭하고 육식하도록 권유해 보라.”



역시 상중이고, 소식(素食)이다. 권육은 고기를 권하는 것이다. 아무리 몸이 수척해도 고기를 함부로 권할 수는 없다. ‘의원의 의견을 참고하여’ 육즙을 권한다. 육즙도 육식이다. 국왕이나 신하 모두 고기 먹는 일, 육즙 마시는 일이 이토록 자유롭지 않았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죄인이다. 삼베옷은 죄인의 옷이다. 음식도 마찬가지. 소식이다. 고기는 죄인의 음식이 아니다. 먼저 금하는 것이 고기, 육즙, 대갱, 곰탕이다.



곰탕, 저잣거리로 나오다

포항 ‘장기식당’의 소머리곰탕. 국물 색깔이 곰탕과 달리 탁하다.
포항 ‘장기식당’의 소머리곰탕. 국물 색깔이 곰탕과 달리 탁하다.

일제강점기, 대갱, 곰탕은 크게 바뀐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곰탕집은 서울 명동의 ‘하동관’이다. 곰탕, 대갱이 저잣거리의 음식으로 나온 것이다. 수하동에 ‘하동관’을 세운 이는 고 김용택 씨다. 김 씨는 1938년 무렵, 청계천에서 인쇄소를 경영했다. 인쇄소는 당시 ‘문화 사업’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시작으로, 중국 대륙을 침략하던 시기다. 경기가 좋지 않았다. 김 씨는, 먹고 살고 자식 공부시키기 위하여 곰탕집을 차린다. 가족들 특히 아들, 딸의 반대가 극심했다. 양과자 점이나 빵집이라면 모를까, 곰탕집은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는 것이 아들, 딸들의 반대 이유였다. 김용택 씨는 “아들, 딸들이 등교한 후 오전 11시부터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인 오후 3시까지 곰탕집 문을 연다” 그리고, “자녀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는 가게를 접는다”고 약속한 후, ‘하동관’을 열었다. 약속대로, 자녀들의 학업이 끝난 1963년 문을 닫았고, 곧 친구에게 ‘하동관’을 물려줬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 설렁탕은 저잣거리의 음식이다. 인쇄업을 했던 김용택 씨가 곰탕집을 선택한 이유다.

‘하동관’의 홈페이지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 서울 북촌 할머니 3대가 탄생시킨 한국 전통 탕반(湯飯) 문화의 절정 (중략) 하동관 1대 손맛 류창희 할머니(1939년~1963년) (중략) 북촌마을의 반갓집 딸로 태어나 북촌 양반집과 궁중음식에 해박하고 (중략) 하동관 2대 손맛 홍창록 할머니(1964년~1967년) (중략) 류창희 할머니의 뒤를 이어 1964년부터 하동관을 이어받은 홍창록 할머니 또한 북촌 토박이.



키워드는 ‘북촌’ ‘반가’ ‘양반’ ‘궁중’ 등이다. 북촌은 경복궁 옆, 오늘날의 삼청동, 가회동 일대다. 고위직 반가, 양반들의 거처였다. 곰탕이 어떤 음식인지 보여준다. 곰탕은, 반가의 음식이다. 오랫동안 제사상에, 손님맞이에 사용했던 음식이다. 제사상에는 대갱으로, 일상에서는 육즙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이 음식이 저잣거리로 나온 것이다.

대갱, 곰탕은 정육(精肉)에서 시작된다. 정육은 뼈나 기름 등을 덜어낸 살코기다. 도축 후, 궁궐과 반가에 공납(貢納)한 것이다. 지방도 마찬가지. 관청, 현직관리, 지역 반가에서 정육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법도에 따라 고기, 육즙, 대갱을 먹었다. 오늘날 중소도시인 전남 나주에 곰탕 전문점이 발달한 이유다. 나주는 목사(牧使)가 근무한 대도시였다.

곰탕의 ‘곰’은 ‘고음’이다. 동사 ‘고다’의 명사형이다. ‘푹 곤 것’이 곰, 고음이다. 고음은 ‘膏飮’으로도 표기한다. 곰탕은, 푹 고아서 진액을 뽑아낸 것이다. ‘고(膏)’는 ‘살찐’ ‘기름진’이라는 뜻과 식물, 과일을 곤, 진액이라는 뜻도 있다.

곰탕은 진화한다.

소 대가리를 푹 곤다. ‘소머리곰탕’이다. 고기는 정육이 아니다. 소 대가리의 살코기다. 소 대가리는 곰탕의 재료가 아니다. 설렁탕의 재료다. ‘사골(四骨)’은 소, 돼지 등의 네 다리다. 사골곰탕은, 소의 네 다리를 푹 고았다는 뜻이다. 고기는 다리 살과 연골조직 등이다. 사골 역시 곰탕의 재료는 아니다. 설렁탕 재료다.

대갱, 육즙, 곰탕은 맑다. 소머리곰탕이나 사골곰탕은 유백색이다. 곰탕은 설렁탕 재료와 뒤섞인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곰탕의 변화, 진화다.

포항 죽도시장의 ‘장기식당’ 곰탕도 유백색이다. 맛있다. 고기도 푸짐하다. 소머리곰탕이다.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따질 바는 아니다. 맛있고, 푸짐한, 변화, 진화한 곰탕이다.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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