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에 위치한 경주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막 깎아놓은 풀냄새가 좋다. 먼 곳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늙은 부모처럼 국보 제 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오늘도 기다림에 젖어 있다. 장중함의 눈빛이 하도 외롭고 쓸쓸하여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본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고 짓기 시작한 감은사는 신문왕 2년(682년)에야 완성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동해에 해중릉을 만든 후, 절의 금당 밑으로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물길을 낸 충과 효가 배어 있는 절이다.

천천히 서탑을 돌며 까마득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신라를 생각한다. 긴 회랑으로 둘러진 감은사, 13.4m의 장대한 동서 삼층석탑은 최초의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크다. 폐사지를 지키는 퇴락의 그림자는 마르지도 않고 두 탑은 해탈이라도 한 듯 초연하다.

창건 당시 감은사 앞까지 이어지던 바다는 천년의 세월 속에서 자꾸만 물러나 앉고 감은사도 사라졌다. 길 잃은 문무왕의 애타는 넋이 떠돌았을 동해를 뒤로 한 채 두 탑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었다. 저녁 연기처럼 흩어지는 옛 왕조의 기억과 낙서 자국이 눈물로 번져간 상처들, 수많은 시인의 찬란한 시구(詩句)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절터를 지킨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바람이라도 불면 울창한 대숲에서 만파식적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데 늙은 느티나무의 투병하는 소리만 애처롭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차들과 술렁거리며 오는 계절의 풍경에 익숙해진 삼층석탑은 또 다시 천년의 기다림을 반복이라도 할 듯 말이 없다.

천년 세월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그의 눈빛에 비해 나의 기도는 조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훈장 같은 말씀 한 마디 던져 주고 떠난다. 바람을 잠재우고 물결이 되어 뒤척였을 수많은 날들의 기다림은 모두 헌사가 되어 그를 위무한다.

묵직해진 마음을 끌고 솔숲에 앉아 문무대왕릉을 바라본다. 햇살 아래 연거푸 일어섰다 쓰러지는 파도들, 여름날의 빈집을 기웃거리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가을이 들어서는데, 꽹과리 소리에 춤을 추며 무아의 경지에 빠져 접신 중인 무녀가 보인다. 이 곳 저 곳, 솔밭이 온통 굿판이다. 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위치에서 신탁을 받을 영매자를 위해 조심스럽고 미안한 구경꾼이 된다.

문무대왕릉을 향해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는 무녀의 손에 들린 붉은 깃발은 언젠가 네팔 여행 중에 보았던 룽다와 타르초를 떠올리게 했다. 소음과 공해로 정신없이 어수선하던 카트만두의 오래된 사원에서,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오르던 전망대 근처에서도, 오색 깃발들은 경전을 읽듯 바람 앞에서 사정없이 울어댔다. 많이 펄럭일수록 신에게 그들의 기도가 더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신의 부름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가난한 영혼을 보았다.

더위를 업고 답을 기다리는 동해의 붉은 깃발, 환생을 꿈꾸는 미이라처럼 젊은 여인의 몸을 감싼 채 자갈밭을 구르던 흰 천의 오열, 모래사장에 수없이 꽂혀 타다만 향의 잔해들, 갈매기와 까마귀의 번들거리는 군무, 굿당이 되어버린 솔밭을 수중릉은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서려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절터만 남은 감은사지, 그래서 갈 곳 잃은 천년의 정신이 끝내 신탁으로 양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염원이 대왕암을 향해 끓어오른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이곳으로 뛰어들어 동해는 깊고 푸른지 모른다. 간절함을 이기는 능력은 없다 했던가. 그들의 곡진한 의식을 있게 한 그 간절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까마귀 떼들이 버려진 젯밥에 몰려들어 배를 채우고는 유유히 날아간다. 윤이 나는 깃털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일 뿐, 그들에게 간절함은 없다. 파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갈매기 무리 속에도 이제 조나단 리빙스턴의 후예는 없다. 높이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더 이상 높이 날 명분마저 사라졌는지 모른다. 풍요 속에 가려진 나른하고 권태로운 눈빛들, 꽹과리 소리는 접신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서너 시간을 솔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삶은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하다.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절박한 몸짓들이 때 아닌 폭설 되어 내 안에 쌓인다. 지척에 보이는 대왕암은 꼼짝도 않는데 숨 가쁜 염원들은 하혈하듯 동해로 흘러들고 바다는 답신하듯 파도를 만들어 보낸다.

도시가 갑갑하면 찾아오던 바다에서 오늘은 교만의 옷을 벗는다. 삶의 완성도는 슬픔과 기쁨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조하는 것. 새살이 돋아 그들의 영혼이 좀 더 말랑말랑해지길 바라며 가을 햇살 같은 기도 한 줌 보낸다.

어찌하랴. 가장 영험해 보이는 신을 찾아 간절히 두 손 모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차안과 피안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며 때때로 난처해지기도 하는 것을.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저리도 평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