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한 ‘조국’
딱한 ‘조국’
  • 등록일 2019.09.22 19:48
  • 게재일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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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설마 설마 했는데, 점점 확신이 깊어간다. 저토록 집중사격의 표적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고 오만 칼질에 너덜너덜해지고 있는데, 조국은 버티고 있다. 이게 혹시 정부 여당의 사석작전(捨石作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기어이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부터다. 무자비한 사냥개로부터 전방위에서 물어뜯기는 그를 굳이 장관에 임명하는 까닭은 멀쩡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다.

사석작전은 바둑의 독특한 전술의 하나다. 접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의 일부를 ‘버림돌’로 내놓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를 잡도록 강요하고, 그 대가로 바깥쪽에서 외세를 쌓거나 그 이상의 실리를 확보함으로써 더 큰 이득을 취하는 작전이다. 미끼에 정신 팔려있는 사이에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양동작전의 개념과 비슷하다.

여권(與圈)이 조국 장관을 처음부터 ‘총알받이’로 쓸 생각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8월 초 장관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경제·안보·외교 실패에 대해 빗발치던 여론이 모조리 조국 난타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여당으로서는 무조건 나쁜 국면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위험성이 전혀 없는 작전은 없다. 오면초가(五面楚歌)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사석작전은 유효한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국 전쟁’이 파생하고 있는 요소 중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휘청거리고 있는 현상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마냥 부정적인 환경만 조성하는 것은 또 아니다. 어쨌든 위기의식을 느낀 약 25∼35% 쯤으로 추정되는 골수 지지자들의 응집력은 더 커졌고, 민심을 얻기 위해 혹독한 ‘제 살 깎기’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어졌다. 당장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대규모 물갈이’에 선수를 치고 나오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의 ‘물갈이’ 시동은 절묘하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환골탈태의 혁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재인 정권 정책실패에 기대어 ‘무조건 보수통합’이라는, 감동적 요소라곤 전혀 없는 케케묵은 잡가(雜歌)나 부르고 있지 않은가. 자유한국당엔 고목 나무에 꽃 피길 바라는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바른미래당은 사이비 중도로 포장된 좌우 해바라기들의 내분 끌탕 드잡이질에 주야장천 여념이 없다. 민주당의 ‘대대적 물갈이’ 선수(先手)는 회심의 일격이다.

이제 여기에서 구태정치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개혁’으로 반쯤이라도 돌리기만 하면 성공이다. 게다가 보수정치세력들이 그동안 별러왔던 권력다툼을 일시에 쏟아내며 극심한 아노미 국면으로 접어들기만 하면 더불어민주당의 그림은 완성된다. 작금의 시큰둥한 민심이 중도나 정치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러주기만 해도 진보는 성공하게 돼 있는 구도다. 제아무리 시끄러워도, 제아무리 정책에서 죽을 쑤어도 진보정권이 이기게 돼 있는 이 야릇한 구도란 참으로 한심한 드라마다. 딱한 조국(曺國)이다. 아니 정말 딱하고 처량한 우리나라 조국(祖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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