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잘 등장하는 충신으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들 수 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토벌하자 “천자를 공격한 신하는 섬길 수 없다”며 두 사람은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만 먹다 굶어 죽는다. 굶어 죽어도 신하된 도리는 다해야 하는 것이 충신이다.

역사 속의 충신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바른말을 할 줄 안다.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하지 못할 때는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하여 정사가 옳게 돌아가게 한다. 자신의 안위는 물론 돌보지 않는다.

특히 충신은 한 나라가 망할 때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절개를 지킨다. 고려 말 정몽주가 대표적이다. 또 충신은 검소하고 청렴하다. 조선조의 최장수 재상인 황희 정승은 소신과 원칙을 견지한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청백리로서도 더 잘 알려져 있다.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를 끝까지 반대하다 유배를 당했지만 그는 오히려 세종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한다. 그의 탁월한 식견과 사리분별력 있는 충언 그리고 청렴성 등이 그를 명재상으로 있게 했다.

충신과 간신(奸臣)은 항상 대립적 관계다. 한쪽은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지만 한쪽은 자신의 이익이 먼저다. 공자는 마음이 음험하고 혜택만 누리는 사람 등 간신의 유형을 다섯 가지 언급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시각이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충신을 등용한 임금은 성군(聖君)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옛날의 임금과 같다. 대통령이 올바르게 국사를 하도록 목숨을 걸고 충언하는 신하가 많아야 나라가 잘 된다. 조국 장관 임명으로 바깥 민심이 소란한데도 대통령의 귀를 열어 줄 충신은 없는지 궁금하다. 몸에 좋은 약은 원래 쓴 법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