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 몸서리쳤는데, 이건 약도 없다니…”
“구제역에 몸서리쳤는데, 이건 약도 없다니…”
  • 곽인규·김세동·황영우기자
  • 등록일 2019.09.18 20:33
  • 게재일 2019.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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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공포 도내 농가에선
외부인 출입 없어 정적 감돌고
철제대문 닫힌 채 분위기 삼엄
농민들 대책 없어 깊은 한숨만
폐수반출 안 돼 대란 우려마저

18일 오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명안리 양돈농가 입구에서 강충열(68) 씨가 포항시 당국의 방역을 지켜보고 있다. 강씨는 “방역 차량을 포함해 모든 외부차량과 사람이 농장에 출입하지 않는 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예방책이다.”라고 전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경북도내 축산농가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폐사율 100%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서 잇따라 양성 확진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9년 전 자식처럼 기르던 가축을 전부 땅에 묻었던 ‘구제역 악몽’이 떠올랐다”고 이구동성이다. 일부에서는 이동중지명령으로 인한 폐수처리 문제 등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관련기사 4면>

18일 오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명안리 한 돼지사육 농가.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위치해 있지만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릿한 돼지분변 냄새가 풍겨오는 농가의 철제 정문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굳게 닫혀 있었다. ‘쓱싹쓱싹’ 돼지 농장 바닥의 톱밥 치우는 소리만 이따금 정적을 깨뜨릴뿐이다. 농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어렵사리 만난 농장주 강충열(68)씨는 밤새 긴장한 탓인지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돼지를 키운지 40년 동안 갖가지 고비를 넘겨왔다”는 그는 “동네주민들의 냄새 민원과 물난리 피해, 늘어난 빚도 견뎌왔지만 ‘약’없는 돼지열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불안감을 표시했다.

3동에 돼지를 키우고, 1동에 퇴비를 거둬 사료로 쓴다는 강씨는 “갑자기 뉴스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 소식을 계속 접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소독만 열심히 할 뿐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모를 전염 가능성 때문에 누구에게도 돈사내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유일한 출입객은 방역을 맡은 관계공무원들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가축방역차량이 농가를 찾았다. 농가 입구와 진입로 등에 소독약을 꼼꼼히 살포했다.

김철호 포항시 기동방역반원은 “이번 아프리카 돼지열병 사태로 축산농가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며 “사람들이 출입제한 등 사소한 준수사항도 꼭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강씨는 “외부인 출입금지와 철저한 소독만이 열병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포항에서는 양돈농가 21곳에서 총 2만6천84두를 사육하고 있다.

ASF 발생지역인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영주지역 양돈농가들은 더 민감하다. 지난 2010년 12월 평은면 오운리 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역내 14개 읍면 216농가의 소, 돼지, 염소, 사슴 등 6만6천470마리가 살처분됐다. 김범식 대한양돈협회 영주지부장은 “돈사 방역과 청결 유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않는다. ASF가 확산된다면 대부분의 한돈 농가들은 폐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한돈 농가인 김상식씨는 “방역, 예찰, 청결 등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이번 바이러스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운에 맡길 뿐이다. 손 놓고 있을수가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역기를 가동하고 돈사내 소독을 평소보다 더 자주 하고있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지역에서는 한돈농가 38가구가 7만6천576마리를 사육중이다.

도내에 양돈농가가 가장 많은 상주시는 초긴장 상태이다. 상주시는 국내 ASF 발병 소식이 전해진 지난 17일부터 청정지역 사수를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행정당국의 방역 가동에도 불구하고 양돈농가들은 극심한 불안에 떨고 있다. 일부 양돈농가는 “사람이 매개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도 속수무책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특히, 일시 이동중지명령이 장기화될 경우 돼지 출하는 물론 당장 축산폐수처리가 불가능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우려했다. 상주시의 경우 전체 양돈농가가 공공처리시설인 상주시축산환경사업소로 폐수를 반입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 오전 6시 30분까지 이동중지명령이 떨어져 농가들은 발생한 축산폐수를 사업소에 내보지 못하고 축사에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ASF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축산폐수 대란이 발생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임점용 양돈협회 상주시지부장은 “현재로서는 철저한 소독과 격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동중지명령이 해제되기만 기다리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축사마다 폐수가 포화상태를 맞게 돼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곽인규·김세동·황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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