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최근 글로벌 IT 리더 기업들의 신제품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10, 11, 버전 숫자가 두 자릿수까지 올라가면서, ‘혁신’ 그 자체보다는 자연스러운 진화와 가성비를 통한 저변 확대에 방점을 두는 기업들. 발표회가 채 끝나기도 전, 리뷰어들은 ‘혁신은 없었다’, ‘특별함은 없었다’ 등의 싸늘한 반응들을 약속이나 한 듯 쏟아낸다.

IT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 기술 수용 주기(Technology Adoption Lifecycle)라는 것이 있다.

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시간차를 두고 확산돼 가는 것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볼록한 종 모양의 곡선이 된다는 마케팅 이론으로,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로저스의 종(Rogers’ Bell Curve)으로도 불린다.

이 ‘로저스의 종’에는 캐즘(Chasm)이라는 작은 ‘틈’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이 출시 초기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반응을 보이지만, 그 후 수요가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후퇴하는 단절현상을 말한다. 호기심이 발동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무조건 구매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용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구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바로 이 ‘틈’에서 IT 업계 리더 기업들의 딜레마가 생긴다. 소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주목과 호응을 얻으려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인 제품을 남보다 먼저 내놓아야 한다. 경쟁자보다 한발 늦으면 초기 시장에서의 입지를 빼앗긴다는 위기감에, ‘실용성’은커녕, 사용자의 기대치를 살필 겨를도 없이 쫓기듯 제품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실용’을 원하는 대다수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못 읽고 결국 대중화에 실패하게 되는 ‘캐즘’. 출시가 늦어져 혁신에 실패하는 경우나, 서둘러 제품을 내놓느라 대다수의 기대치를 제대로 충족 못한 두 경우 모두, 제품개발 과정의 막대한 투자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업은 혁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선택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 IT업계가 터득한 것이 바로 ‘린(Lean=군더더기 없이 가벼운)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 내놓고 싶은 제품이 화려한 3단 웨딩 케이크라고 하자. 청사진은 3단 웨딩 케이크를 멋지게 그려 두되, 파티셰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컵케이크’부터 만들어(Make), 먼저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해보고(Check), 아니다 싶을 때는 보완책을 모색하여 고치는 것(Think)이 린 접근법의 핵심이다.

스마트 세상을 만드는 일은 비유하자면 3단 웨딩 케이크 만큼이나 복잡하고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컵케이크부터 차근차근 키워 나가는 IT업계의 린 접근법이 스마트 세상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