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세상에 나돈 건 지난 1988년 10월이었다. 교도소 이감 중이던 지강헌(池康憲)을 비롯한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한 뒤, 9일 동안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서로 총을 쏘거나 경찰에게 사살 또는 검거됐다. 주범 지강헌은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 “돈 있으면 무죄요,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취임은 아무리 돌아봐도 무리다. 문재인 정권은 가라앉지 않는 여론 악화를 차단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조국 장관 딸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등재로 촉발된 공분을 ‘물타기’ 하는 일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아들의 서울대 실험실 사용 문제를 소환했다.

때마침 제1야당의 공격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 물의가 발생하자 오만 논리를 다 동원해 역공에 나섰다. 조국의 수신제가(修身齊家) 실패 모욕에 ‘물타기’ 하려는 치사한 선동술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민심의 거울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검찰이 조 장관의 5촌 조카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의혹의 키맨으로 불리는 혐의자가 날쌔게 해외로 달아났다가 장관 임명 직후에야 돌아오는 모습을 국민들은 과연 순수하게 읽어줄까. 조 장관 임명과정에서 불거진 논란 중에 최대의 모순은 ‘피의사실 공표’ 시비다. 조국 관련 수사기밀이 검찰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의심인데, 새삼스럽고 뜬금없는 불평으로 들린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아니고서는 출처를 따로 짐작할 수 없는 수사기밀들이 언론과 야당에 흘러 다닌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 그런 적이 없었던가를 오히려 생각하게 된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 공표)는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들이 있다. 대통령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치욕스러운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시종일관 ‘피의사실 공표’의 광풍 속에 펼쳐졌다. 광폭으로 전개된 소위 ‘적폐 청산’ 수사는 또 어땠나. 정치보복으로 비친 그 편파 수사 역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선동을 앞세워 자행돼온 게 어김없는 사실 아니던가.

그때는 괜찮고 지금은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유치한, 법치를 향한 어불성설의 ‘내로남불’ 의식이 탄식을 부른다. 온전한 정신이라면 그때도 잘못됐고, 지금도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도둑놈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을 망신주기 위해 온갖 허물을 털어내는 구상유취한 짓은 제발 멈춰야 한다. 달을 보라 했더니 가리키는 손가락만 시비하는 일에나 몰두하는 구태정치는 청산돼야 한다. 아니, 그 ‘달’과 ‘손가락’의 혈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몰염치에 짓밟혀 쓰러지는 민생과, 무너지는 나라의 미래를 살려내야 한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