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체육관 이재민 스케치
남아 있는 지진 이재민 30여명
비 새는 건물, 텐트서 더위와 사투
화장품 등 떠난사람 물건 ‘어수선’
의미 없는 쓸쓸한 추석 또 찾아와

10일 오후 포항지진 이재민들의 숙소인 포항 흥해체육관 전경. /이바름기자

체육관 안은 후텁지근했다.

벽에 걸린 온도계 수은주는 실내온도 29℃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24∼25℃였던 낮 기온이 갑자기 32℃로 훌쩍 오르면서, 구석 한편으로 내쫓겼던 선풍기와 부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실내는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뜯긴 장판부터, 텐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양동이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한쪽 벽면엔 물이 흐른 자국이 진하게 보였다. 지난 한 달간 내린 빗물이 틈새를 뚫고서 체육관 안으로 흘러든 듯한 모습이었다.

10일 오후, 포항흥해체육관 안에 있던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점심 후 식곤증에 몸을 맡겨 옆드린 채 텐트 안에서 깜빡 잠이 든 60대 여성, 이를 닦으면서 텐트 안을 정리하던 50대 여성, 대형TV 앞에 의자를 펴고 앉아 여유로운 오후 한때 뉴스를 보는 한 남성. 한 텐트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여성의 목소리가 체육관에 조그맣게 울렸다. “외롭다니까”

체육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전 중으로 이곳을 떠난다. 출근하거나, 따로 외부에 볼일을 보러 나가기도 한다. 오후 5∼6시가 되면 다시 체육관에 모여 저녁을 해결하고 나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눈다. 또는 각자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포항지진 직후 400여 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함께 생활했던 흥해체육관에는 이제 20∼30명 내외의 인원만 남아 생활하고 있다. 제 집이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나고 나서 남은 240여 개의 텐트에는 대부분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화장품이나 세면도구, 이부자리들만 사람의 손길이 끊긴 채 덩그러니 나뒹굴고 있다.

남아 있는 이재민들은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지만,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지진 이후 지금까지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이재민은 추석이 평일처럼 의미 없이 지나갈 거라고 했다.

“자식들도 바쁘다고 해서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과 명절을 보낼 거 같다”고 말한 이재민은 지난 설 때나, 작년 추석 등 지나간 명절까지만 해도 새 보금자리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의미가 없다”고 체념했다.

현재 흥해체육관에 등록된 가구 수는 총 92가구, 208명이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 이후 이들은 흥해체육관 내 1평 남짓한 텐트에서 송두리째 뒤바뀐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피해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주거 지원 등을 받지 못한 이재민들은 이번 추석도 이곳, 흥해체육관에서 보낼 예정이다. 벌써 4번째 명절을 보내는 셈이다. 내년 설도 이곳에서 보낼 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재민들은 오늘도 2017년 11월 15일을 살고 있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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