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배려의 달
9월, 배려의 달
  • 등록일 2019.09.09 20:05
  • 게재일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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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결혼한 지 5년이 채 안 된 후배가 추석 인사 겸 감사의 뜻도 전한다며 연락이 왔다. 그런데 긴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작년까진 회사에 급한 일로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는 가야 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연중행사처럼 스트레스증후군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하니, 괜한 씁쓸함이 몰려왔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많다. 큰 명절을 쇠고 나면, 이혼율이 평소보다 몇 배나 급증한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명절 연휴가 긴 경우는,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서둘러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옛날, 추석에 행해진 많은 풍습들 중에 반보기라는 것이 있다. 이는 며느리가 떡, 술병, 닭이나 달걀꾸러미 등을 들고 친정에 가는 근친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친정과 미리 통문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해,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하던 풍습이었다. 이때, 딸과 친정어머니는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서 만났는데, 중간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회견(中路會見)이라고도 했다. 한번 결혼하면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그 때, 그래도 추석동안만은 짧지만 친정어머니와의 회포를 풀도록 한 시댁의 아름다운 배려였던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명절 때만 되면, 친정 방문을 앞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침부터 서둘러 친정에 가려고 온갖 일거리를 바삐 마무리하는 며느리와 그 마음을 모른 채 늑장부리는 남편 간의 미묘한 감정 다툼, 빨리 가라 재촉하는 시부모님이라면 참 다행이지만, 점심까지 먹고 가라고 붙들면 이제 며느리는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짜증스러울 법하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안 가거나 해외로 멀리 갔으면 하는 마음마저 생겨날 터.

옛날, 추석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여름내 고생한 농군들이 소놀이(일을 잘한 상머슴을 농우에 태워 마을을 누비던 풍습)·거북놀이(“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큰 집을 찾아가던 풍습)를 하면 주인들은 음식을 크게 대접하였고, 가난해서 추석 음식을 장만 못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고, ‘추석빔’이라 하여 머슴들에게까지 새 옷을 마련해 주었으며, 친정에 자주 못가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손수 음식들을 장만해서 친정어머니를 보고 오라 독려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아름다운 풍습들이 아닐 수 없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절은, 진정한 명절이 아니다. 비록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개인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그래도 추석이 있는 9월 달에는, 한번쯤, ‘나’가 아닌 ‘우리’, ‘너’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햇과일, 햇곡식만 풍성한 계절이 아니라 진정 마음과 정신이 풍성한 계절 가을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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