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선생님이 안계셨으면 이 책도 없었습니다.”

개강 첫 주 학교를 찾아온 경욱군이 자신이 쓴 책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를 건네주며 속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창업한 경욱군이 카카오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365일 문을 닫지 않는 마트에서 바쁜 일상 틈틈이 책을 읽고 고민했던 청춘의 시간이 진솔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경욱군은 “글쓰기를 통해 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주제에 대한 내 의견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아나갔다.”고 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니, 자신의 책을 낸 제자의 모습을 보며 대학 교양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한 학기 수업만으로 끝나지 않는 인연이 있다. 경욱군은 2011년 ‘리더십과 의사소통’ 수업에서 만난 서강대 학생이었다. 타 대학 교양 수업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당시에 만났던 학생들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말한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었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함께 만들어갔던 즐거운 수업이었다고.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잡아 탐색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교수자로서 했던 역할은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고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며 질문하고 피드백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통과한 이 시간을 기억하였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단지 도울 뿐이다.” 미국 세인트 존스 대학 총장은 말한다. 대학 4년 동안 전공교육은 없다. 대신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교양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다. 카넬로스 총장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 목표라고 강조한다.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 가는‘튜터’가 있을 뿐이다. 강의실 안팎에서 새로운 배움에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도록 자극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수는 학생의 잠재력을 믿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선배이자 코치인 것이다.

경욱군은 자신의 꿈을 말한다. “단순히 돈 많은 사람보다 돈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미 ‘십시일반 프로젝트’, ‘고사리 희망장터’를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고 있음에도 그의 마음은 세상 속에 더 의미있는 실천을 꿈꾼다. 대학에서 한 학기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경험적으로 믿게 된 진실이 있다. 당장의 결과로는 알 수 없는 의미 있는 성장이 그 시간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결국 글쓰기와 토론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이들과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된다. “꼭 청출어람 하겠습니다”고 한 경욱군의 다짐이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