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오십 명 넘게 들어가는 긴 버스에 올랐다. 이제부터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지나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년까지 가는 2박3일 여정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전전날 우리는 팜프스링스라는 곳에 가 문학캠프를가졌다. 나는 ‘기미년 삼일운동과 안창호’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핫스프링스라는 별명답게 팜스프링스는 밤 늦게까지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은 이십 년 전부터 알던 김준철 시인 안내로 산타모니카 지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안창호 하우스에도 가고 말리부 해변까지 나갔다 돌아와 저녁에는 대한항공 73층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로스앤젤레스는 크다기보다 정이 가는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버스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바다 주로 넘어가 여러 시간을 달렸다. 태평양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신채호 선생과 관련한 원고를 써야 했지만 아직도 일이 남아 있었다. 버스 안에서 타자를 치는 건 목디스크와 원인 모를 어지럼증으로 아주 어려워졌지만 끈기를 부렸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써야 할 긴 분량의 글이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들어 버스 맨 앞좌석에 앉은 덕에 훤히 펼쳐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고원 지대 가까운 높은 한없이 펼쳐진 땅이 태양 볕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은 황원과 산맥은 중국 만리장성 밖 내몽고 가는 길에서나 보았던 풍경이었다. ‘데쓰 밸리’라는 이름의 계곡이 있다고 해서 과장벽이려니 했는데, 버스 엔진 과열로 잠시 선 틈을 타 내려 본 네바다 황원은 단 십 분도 제대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버스는 계속해서 외줄기 길을 말없이 나아갔다. 어렸을 때 ‘새소년’이나 ‘소년중앙’에서 보았던 사막 풍경이, 그러니까 선인장과 자갈돌들, 그리고 근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산맥이 전부인 모습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준철이 모처럼 나타난 작은 도시를 보고, 이곳에서 업체를 운영했었노라고,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에 가다 여기가 그곳인 줄 알고 카지노에 들어가 다 날리고 돌아선다는 유머가 있다고 했다. 과연 길 가에 카지노 호텔 몇 개가 자못 라스베이거스 흉내를 내고 있었고 조금 더 가자 멀리 교도소까지 보였다.

나도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뭔가 일을 저질러 봐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도 같다. 과연 내게도 행운이라는 게 찾아오기는 할까. 그러나 ‘눈이 덮인’, ‘눈이 내린’이라는 뜻의 라스베이거스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