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에라자드는 자신과 결혼한 여성을 죽이는 강박증을 가진 샤리아 왕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천일야화’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늘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흘러간다. 한 번 이야기에 붙들린 인간은 그 어딘가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결국 끝날 때까지, 그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야기에 들린 경험이란 어린 시절일수록 더욱 강렬한 법일 터, 고백하건대 나는 어린 시절 어린이용 문고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고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에 붙들려, 중앙아시아 부근의 저 먼 어느 세계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분명 어린 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었거나 혹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중동 지역에서 누군가의 입을 떠돌던 구전의 이야기를 모아둔 것으로, 1,001일 밤 동안 이어진 이야기라는 의미로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라 부른다.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 제각각 생겨난 280여 편 정도 되는 이야기들을 모은 것인 만큼, 이 이야기들 사이에 연관성은 없다. 어린이용 문고판에는 신밧드의 이야기나 알라딘의 마술램프 같은 어린 아이들의 모험에 대한 취향을 자극할 만한 것들이 특별히 선택되었던 것뿐이다.

이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의외로 재미있는 것은 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엮고 있는 액자가 되는 이야기이다. 바로 우리에게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로 알려진 그것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고대 페르시아 왕에게 두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맏이인 샤리아가 왕위에 올랐고, 동생인 샤즈난은 평민으로 만족했다. 샤리아는 그런 동생이 기특해서 타타르 왕국을 그에게 주었고, 샤즈난은 그 왕국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샤즈난은 자신의 왕비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형인 샤리아에게 해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샤리아는 오히려 본인이 여성에 대한 공포에 빠져, 여성과 결혼을 하고 하룻밤이 지난 뒤 그 여성을 죽이는 끔찍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샤리아 왕의 고약한 습벽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도시에서 거의 사라질 때쯤, 당시 ‘채홍사’를 맡고 있던 재상의 딸이었던 셰에라자드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샤리아 왕과 결혼하여 샤리아의 끔찍한 행위를 막아보겠다고 자원하게 된다. 셰에라자드는 그렇게 동이 떠오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앞두고 있던 셰에라자드가 이어가던 이야기가 바로 ‘천일야화’였던 것이다.

동이 터오고 샤리아 왕이 자신과 결혼한 여성을 죽여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샤리아 왕의 고민이 시작된다. 여느 경우처럼 셰에라자드를 죽이면 더 이상 그 이야기의 뒷부분을 들을 수 없다. 샤리아는 그래서 셰에라자드를 살려두고 다음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여성에 대한 공포가 빚어낸 강박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이겨낸 것이다. 호기심은 그렇게 힘이 세다.

셰에라자드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을 터.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샤리아의 관심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독자의 서늘한 눈빛을 상상하는 연재 작가의 공포와 닮았다. 그런 공포와의 줄타기 끝에 셰에라자드는 무사히 천 일과 하루 동안 이어진 이야기를 마친다. 물론 영원히 이어지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언젠가 셰에라자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샤리아는 그간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이야기의 두 번째 힘은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분명, 이야기는 어딘가로부터 와서 어딘가로 흘러간다. 우리는 그 흐름 어딘가에서 이야기에 붙들리고 그 이야기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한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샤리아가 붙들렸듯이.

/송민호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