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

9월은 독서의 달, 이른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등화가친이란, ‘등불을 가까이 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가 그의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의 끝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때는 가을이라 긴 장마 걷히고/신선하고 서늘한 바람 들에서 불어오니/등불 점점 가까이 하고/책을 펼칠만 하다’ “시추적우제(時秋積雨霽) 신량입교허(新凉入郊墟)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 간편가권서(簡篇可卷舒)” 54행으로 된 오언고시(五言古詩)에서 한유는 어려서 비슷하던 아이들이 자라나 두각을 드러내면서 하나는 용이 되고 하나는 돼지가 되는 것, 누구는 군자가 되고 누구는 소인이 되는 것은 배우고 배우지 않은 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들을 아끼는 마음과 공부를 채근하는 마음이 엇갈린다면서도 세월을 아껴 책을 읽고 시를 지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해가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13년 71.4%, 2017년에는 60% 이하로 떨어졌다. 1년 간 책을 한 권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4명이나 된다. 시대가 각박해지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 휘말려서일까?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수시로 보거나 들을 수 있으니, 독서에 투자하던 시간과 노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면서 책과는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초간편사회가 된다 해도 책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까지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생각의 힘과 창의성은 독서와 토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독서는 깨달음의 원천이다. 경험해보지 못해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라도 얻게 해준다. 그것은 곧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하고,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며,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독서는 사람의 재능을 밝혀주고 지혜를 더해주는 마음의 등불이라 하지 않았던가.

필자의 주위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독서와 토론을 하고, 소리 내어 윤독(輪讀)을 하며 책읽기의 재미에 빠지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진지하며, 중년의 연배임에도 저마다 글 읽는 목소리는 샘물처럼 낭랑하기만 하다. 아마도 변하지 않는 친구를 대하듯 책과 만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정겨움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독서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소소하지만 생활의 저변에서 독서문화를 조성해가는 작은 변화의 물꼬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키우고 길러낸다.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는 책 속에 가득하다. 책을 읽는다면 그 계기들을 만날 수 있고, 고금동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천랑기청(天朗氣淸)한 가을의 길목에서 풀벌레 소리의 화음에 맞춰, 책장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감칠맛 나는 이야기 나라로 독서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