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일에 다시 보는 ‘한일합방 문서’
경술국치일에 다시 보는 ‘한일합방 문서’
  • 등록일 2019.09.01 18:48
  • 게재일 2019.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지난 8월29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완전히 나라를 빼앗긴 수치스런 날이다. 1910년 8월22일 체결된 8개항의 합방 문서가 8월29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 한일 합방조약 전문 1조에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다. 나머지 조항은 합방 후 한국 왕실에 대한 예우, 합방 훈공 한인의 예우, 한인들의 관리 채용 등 식민화를 위한 사탕발림식 내용이 들어 있다.

일본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조선의 국권을 강제 탈취하였다.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 간섭을 시작하였다. 1907년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행정각부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여 실질적인 내정을 장악하였다. 뒤이어 군대를 강제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까지 탈취하여 1910년 한일 합병 조약을 완성케 한 것이다. 합방문서의 전문에는 ‘양국의 상호 행복을 증진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병합조약을 체결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말미에는 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서명이 들어 있다. 임금의 옥쇄도 없는 이 엉성한 문건이 식민 통치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경술국치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경술국치는 일본의 강점이라는 외재적인 원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매국노 이완용과 송병준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당시의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활동은 광무 정권의 외교 노선과 입장을 달리하였다. 애국 계몽세력과 위정척사 유생들 간에도 민족 문제로 갈등하였다.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은 실패하고 정약용 김옥균의 개혁정치는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한말의 무능한 국왕과 관료 부패와 대립이 경술국치를 자초한 셈이다. 우리는 한말의 정세를 거울삼아 일본의 경제 압박을 여야가 합심하여 대처해야 한다. 오늘도 우리에게 백배 사죄해야할 가해자 일본은 반성은커녕 경제 문제로 우리를 겁박하고 있다.

아베의 경제제재는 후발국가인 한국의 전자, 통신 산업 등이 일본을 앞지른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그들은 화이트 리스트 배제를 전략물자의 유출 등 우리에 대한 안보 불신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폐기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이다. 우리 국민들이 아베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분노하면서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일본이 다시 국제법 위반 운운하면서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우리는 차제에 일본 의존적인 경제부문에 과감히 투자하여 새로운 경제 기술 프레임을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극일을 위해서 109년 전의 경술국치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젊은 세대들은 경술국치의 의미마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자체의 조례에는 엄연히 조기 달기를 규정하고 있지만 관청에서도 조기게양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46개의 국가기념일이 제정되었지만 아직 경술국치일만은 빠져 있다. 경술국치일을 우리가 ‘국민 각성의 날’로 제정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희망이 없다는 말을 다시 명심할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